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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세계 최초 민주정 아테네 쇠망의 교훈

 세계 최초로 민주정치를 도입한 도시국가 아테네 쇠망 원인의 하나로 포퓰리즘에 따른 재정난이 꼽힌다. 그 가운데 하나가 ‘테오리콘’이라는 복지정책이다. 테오리콘은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정책화한 제도다. 원래 가장 많은 최하층 시민(제4계급)이 군무와 공무에 의무적으로 종사해 본업으로 돈을 벌 수 없는 기간에만 적용하던 경제적 보상 정책이었다.  


 페리클레스가 죽고 스파르타와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뒤 선동정치가(데마고고스) 클레온이 등장하면서 테오리콘은 모든 시민을 위한 상시적 복지로 변질된다. 군사적인 일이나 추첨에 따른 행정직을 맡지 않을 때도 본업을 통해 버는 것보다 약간 적은 금액을 국가가 모두 보장하는 방식이다. 시민의 인기를 끌 목적이었다. 그러자 테오리콘은 병역 기피의 한 요인이 됐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비슷하니 기피 심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테오리콘 제도를 본래 취지대로 돌려놓고 싶어도 시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었다. 군선을 만들거나 물을 확보하기 위한 공사가 필요해도 테오리콘에 손대는 것만큼은 시민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중우정치(衆愚政治)를 혐오한 철학자 플라톤은 테오리콘이 아테네 시민을 거지 무리로 바꾸어 놓았다고 일갈했다. 민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제4계급은 돈이 필요하면 테오리콘을 놔두고 제3계급 이상의 자산가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나라 곳간이 비면 임시 증세를 해서 재정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테오리콘이 나라 경제에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떠오르는 강국 마케도니아의 침공을 막기 위해 해군력을 재건하려 해도 재정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아테네 몰락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포퓰리즘에 따른 중우정치의 폐해가 가장 크다. 당시 유명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의 흥망성쇠도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물의 문제라고 보았다.


 클레온의 포퓰리즘은 고단수였다. 그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이라는 명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훗날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남북전쟁 후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남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클레온이 저작권을 갖고 있다.


 아테네 민주정이 멸망한 뒤 줄곧 외세의 지배와 군사독재 정권 등을 거쳐 2천여 년만인 1980년대에야 가까스로 그리스 민주주의가 회복됐으나, 또다시 복지 포퓰리즘의 덫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81년 집권한 그리스 진보 정권은 초기보다 2.5배가 넘는 공무원 증원, 대학까지의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무료 대중교통 같은 과잉복지로 국가 부도를 초래했다.  


 너무 자주 언급되어 식상할 정도인 세계 5대 경제대국 아르헨티나의 몰락, 베네수엘라 국가부도 상태 역시 아테네가 보여준 포퓰리즘 정치와 과도한 재정지출 업보의 속편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유력 후보가 과잉복지와 과다 재정지출 공약하고 있는 것도 아테네를 닮았다. 집권당의 선두주자는 임기 중 모든 청년에게 연 200만 원, 나머지 국민에게는 100만 원씩 나눠 주겠다고 공약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2023년에만 19조 원이 들고, 나중에는 연간 57조 원의 거액이 필요하다.


 ‘청년기본소득’ ‘보편기본소득’이란 이름을 붙였으나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소득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이 방안은 커지는 경제적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해소하기도 어렵다. 여야 경쟁 후보들은 물론 복지 전문가들로부터 ‘외식 수당’ ‘푼돈’ ‘가짜 기본소득’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행해야 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때 이르고 섣부른 실험이다. 한국보다 복지 선진국인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가 중단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로 부결됐다.


 진보적 복지정책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가성비도 좋지 않고, 지속가능성도 현 단계에서는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필요한 재원은 기존 예산 절감, 물가 상승에 따른 세금 증가분, 세금 감면 축소, 국토보유세, 탄소세 신설로 충당한다지만 실현성이 역시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존 복지정책의 전면 재조정 없이는 지속해서 실행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후보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우려를 키운다. 정부에서 하위 88%에게 주기로 한 재난지원금을 자신의 지자체만 주민 100%에게 주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 19에다 폭염에 시달리는 전체 국민의 전기요금 5000억 원가량을 깎아주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대학에 안 간 청년들에게 해외 여행비로 1000만 원씩 주면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도 던진 적이 있다.


 아테네가 그랬듯이 새로운 현금 복지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다. 반복되면 국민은 혜택이 아닌 권리로 인식한다. 국가 지도자의 포퓰리즘은 중우정치를 부추기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기 쉽다는 걸 세계 역사가 보여준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