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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선진국 콤플렉스’를 넘어

  코로나 19사태가 낳은 긍정적인 영향의 하나는 한국이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라는 자긍심을 심어준 것이었다.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이 한결같이 인정하고, 우리 국민 스스로도 목격하고 느꼈다. 이 과정에서 오랜 ‘선진국 콤플렉스’를 떨쳐낸 것은 습관적 자기비하와의 결별이기도 하다. KBS가 지난해 코로나 이후 달라진 한국사회의 인식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3.5%가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대답했다. 이 가운데 한국이 기존 선진국보다 더 우수하다는 응답자도 58%에 달한다. 


 그 1년 전만 해도 응답자 57.4%가 한국은 희망 없는 ‘헬조선’이라고 여긴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한국 언론은 선진국 사례를 소환해 비교하기 바빴다. 정치·사회 시스템 문제가 불거지면 늘 유럽이나 미국의 예를 들어 개선책을 제시하곤 했다.


 코로나 19 사태 직후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한국이 미국보다 선진국이라는 칼럼을 미국 언론에 써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콜린 마셜이란 미국인은 뉴요커지에 한국인은 미국인과 비교해서 평균수명이 더 길고, 더 건강하며,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직업도 더 안정적이고,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더 낮다고 통계까지 들었다. 마셜은 한국인들은 여러 이유로 스스로 후진국이라 생각하고, 선진국, 특히 미국에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1인당 국민소득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선진국이라고 증명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어떤 조건을 갖춰야 선진국인지 명확한 기준과 국제적으로 통일된 개념은 없다. 선진국 분류지표도 국제기구마다 조금씩 다르다.


  선진국 분류지표로는 대개 7가지가 통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소득 회원국, 유엔개발계획(UNDP) 인간개발지수 상위국,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정하는 고도경제국, 세계은행이 꼽는 고소득 경제국,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고도경제국,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정한 삶의 질 상위 30개국이 그것이다. 여기에다 채권국 비공식 협의체인 파리클럽 회원국, 민주주의 지수 상위국(완전한 민주주의) 같은 것을 평가하기도 한다. 한국은 여기에 빠짐없이 들어간다.


 지난 주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이 명실공히 선진국이라는 증명서가 하나 더 날아왔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2일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다는 소식이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올라선 것은 한국이 최초라고 한다. 사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나라)에 2018년 세계 7번째로 들어섰다. 30-50클럽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면 모두 G7 회원국이다. 

                                                                           


 일부 국제기구는 오래전에 한국을 선진국으로 꼽았다. 한국을 가장 먼저 선진국으로 지정한 것은 국제통화기금(1991년), 두 번째는 세계은행(1996년)이다. 유엔에서 발표하는 통계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전환한 것도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다. 통계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2010년부터는 97% 이상의 관련 지표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다.


 한국은 국익 전략상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것을 미루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국제기구는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하고 선진국으로 올려놓았다. 한국은 국내 농산물 시장을 고율 관세로 보호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를 고집해 왔으나 2019년 트럼프 미국정부의 압력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는 박근혜 정부가 한국을 신흥국으로 남게 하려다 격렬한 반발을 못 이겨 결국 선진국 클럽으로 편입됐다.


 ‘선진국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국민의식과 문화, ‘삶의 질’ 면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가깝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선진국들이 달성한 복지와 노동 분야의 수준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사회적 재난이 잦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 자살률, 양극화, 부족한 사회안전망처럼 해결해야 할 숙제도 숱하다. OECD 국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실태를 비교해 보면(가장 최근 2017년 기준) 한국이 다섯 번째로 높다. 이 가운데 건설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2017년) 수는 회원국 중 최고다. 


 한국 사회의 가파른 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복지와 안전망도 인색하기만 하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이 부족한 부분은 물질적인 것보다 문화적 다양성, 개인의 자유, 금지와 허용의 제도적인 면이 많다.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은 사회통합과 청렴성을 추구한다. 한국은 그동안 외형을 그럴듯하게 갖추는 데 집중해왔다. 진정한 선진국은 모든 분야에서 예방적 활동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바람직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