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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민주당의 화양연화

 홍콩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황금기를 표상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화양연화는 지난해 4.15총선 압승 때 시작됐다. 민주당은 스스로도 예상못한 황홀경에 도취해 1년여 동안 거의 모든 걸 하고 싶은 대로 다해 봤다. 탄핵당한 보수야당의 회복 탄력성은 20년 이상 작동 불능이리라 믿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혁반대는 발목잡기로 몰아붙이면 그만이었다. 180석(열린민주당 의석 포함)을 몰아준 이유도 모르느냐고 응원단이 한마디 하면, 나머지 국민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민주당이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근본원인은 역설적이게도 180석의 오만이다. 180석은 1987년 정치체제 이후 한 정당이 획득한 신기록이었다. 사실 다수의석을 얻기 위해 쓴 꼼수부터 문제였다. 자신들이 주도해 통과시킨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비례정당을 만든 야당을 비판하면서 따라했다.


 대승 이후 강성 지지층과 의석수에 취해 검찰개혁에만 몰두하고 입법 일방통행을 일삼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거대의석은 무소불위의 오만으로 작동했다. 16대 국회부터 야당이 맡아온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야당의 반발을 빌미삼아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는 신기원을 세웠다. 자기편의 특권과 반칙은 눈감거나 두둔했다. 무능 오만 독선 내로남불은 야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으로 여겼다.

                                                                           


 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동산 관련 법안은 단독으로 밀어붙였다가 시행착오가 생기면 다시 고치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부끄러움이 없다. 정치 의제에 몰두하면서 민생 과녁 오조준이 많았다. 조국사태 이후 민주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내쫓고 검찰개혁만 하면 나라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될 것처럼 보이게했다. 지금까지 검찰개혁을 보면 권력 수사막기, 친정권 검사 키우기 외에는 눈에 띄는 게 별로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국민이 다수임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우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언젠가 소수당으로 바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힘자랑만 했다.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공수처법, 검찰개혁법, 주요 정책과 국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역지사지 상황은 아예 상정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공수처장 임명에 대한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공수처법을 강행처리해놓고 야당의 비협조로 여의치않자 40여 일 만에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고 말았다.


 국민 혈세도 함부로 쓰기 예사였다. 애초 사업비보다 4배나 많은 28조원이 투입된다는 가덕도신공항만 만들면 부산 선거에 이기는 것쯤은 걱정 없다는 듯 강행했다. 그랬지만 참패의 쓴맛을 봤다. 미투 의혹, 불륜, 절도, 음주운전 같은 온갖 추문들이 걸렸다하면 민주당 쪽일 때도 있었다.


 민주당 실세였던 이해찬 전 대표는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 ‘100년 집권론’까지 내놓았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다른 중진도 4번 20년 정도 집권해야 한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하지만 6월 둘째주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13주 연속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준석 새 대표가 취임한 국민의힘 지지도는 전주 대비 1.1%p 상승한 39.1%를 기록했고, 민주당은 0.5%p 하락한 29.2%로 나타났다.(리얼미터 YTN 여론조사 결과) 1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은 호남에서만 국민의힘을 앞섰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 기대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론 50%, 정권재창출 36%여서 민주당의 열세가 확연했다.


 새 대표체제 이후 개혁을 다짐했으나 실체를 찾기 어렵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체제에 비해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무기력은 도드라져 보인다. 개혁에 앞장서기는커녕 상대당 젊은 대표 흠집내기 선봉장으로 나섰다. 조국 키즈로 불리는 김용민·김남국 두 초선의원은 조국 두둔에 온 힘을 바치던 것과 달리 내로남불의 행태를 재현했다. 송영길 신임 대표가 내로남불을 반성하고 ‘조국의 시간’을 ‘국민의 시간’으로 돌리겠다고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촛불정권을 자처하는 민주당 정권에서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 진보진영에서도 나오는 것은 되새겨봐야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7.8%만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가 58.2%였다. 민주당은 아킬레스건 같은 부동산 문제만 악화하지 않으면 정권재창출 걱정이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화양연화는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꽃이 지고서야 문득 꽃을 보네/ 네가 떠난 뒤에 비로소 널 만났듯 / 향기만 남은 하루가/ 천년 같은 이 봄날.’ 민병도 시인의 시 ‘낙화’가 상징하듯이 말이다. 안일하게 정권재창출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 같은 민주당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대목을 들려주고 싶다. “이처럼 격렬한 기쁨은 이처럼 격렬한 종말을 맞을지니.” 유능하지도, 치열하지도 않은 민주당에 사시장춘(四時長春)은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