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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노르딕 국가에 갑질 문화가 없는 까닭

  노르딕 다섯 나라 국기를 자세히 보면 같은 무늬가 공통으로 새겨져 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친 스칸디나비아 십자 무늬다. 덴마크 국기인 ‘단네브로’(Dannebrog) 도안이 그 기반이다. 덴마크 국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1219년부터 사용)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북유럽 이사회를 형성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덴마크는 갑질문화가 없는 게 특징으로 꼽힌다.

 

 덴마크의 칼스버그 맥주 광고가 상징적이다. ‘아마 세계 최고의 맥주’(Probably the best beer in the world)라는 표현은 사뭇 겸손하다. 갑질 없는 ‘얀테의 법칙’(Janteloven)의 정신이 담겼다. 노르웨이 항공은 ‘얀테의 법칙’을 소설 작품으로 빚어낸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제’(Aksel Sandemose)의 초상화를 여객기 꼬리 부분에 자랑스레 그려놓았다.


 ‘보통 사람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얀테의 법칙’은 산데모제의 풍자소설 ‘도망자’(1933년)에서 유래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가상의 작은 덴마크 마을 얀테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열가지 불문율이 있다. 하나,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둘,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셋,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섯,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섯,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일곱,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덟, 남들을 비웃지 마라. 아홉, 누군가 당신을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열, 남들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불문율을 깨려는 사람은 마을 공동체의 조화를 깨는 적으로 여겨진다.

                                                                       

                                                                          
 ‘얀테의 법칙’은 노르딕 국가 사람들이 일상에서 쓸 만큼 널리 알려진 사회학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 법칙은 산데모제가 창작한 게 아니다. 노르딕 국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여러 세기 동안 전해오는 것을 명시했을 뿐이다. 소설에는 열한번째 규칙인 ‘얀테의 형법’이 추가되어 있다. ‘우리가 당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얀테의 형법은 누구에게나 죄를 씌울 수 있고 어디든 적용될 수 있다.


 ‘얀테의 법칙’은 누구라도 더 특별할 게 없고 모두가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철학의 집대성이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와 개인을 존중해주는 문화의 토대를 형성하는 바탕이다. 노르웨이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너는 최고다” “너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웨덴의 ‘라곰(Lagom)문화’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함을 상징한다.


 ‘갑질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하루가 멀다고 갑질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한국인들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공동체다. 갑질피해로 말미암아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모욕이 일상화된 문화 탓이다.


 수평적 직장문화를 자랑하던 정보기술(IT)업계 최고 직장에서마저 최근 상사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이 벌어진 사건은 충격적이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이 회사 게시판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가관이다. ‘대외적 이미지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젊은 꼰대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구멍가게.’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갑질행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야당 국회의원이 재보궐 선거 개표상황실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자에게 발길질과 욕설을 해 결국 탈당한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기업 오너와 가족들의 갑질행패는 심심하면 터지는 시한폭탄 같다. 경비원을 상대로 한 입주민 갑질, 택배기사에 대한 갑질,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갑질 등은 웬만해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만연해 있다. 사실 권력기관의 갑질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한국의 모든 갑질은 청와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1월 발표한 ‘국민 갑질 인식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한국 사회의 갑질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은 지난 1년 동안 갑질 피해를 직접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괴롭힘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과 유형별 명시 범위가 좁다. 2019년 7월 16일부터 2020년 9월 30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5658건의 갑질 진정사건 가운데 80%가 취하하거나 단순 행정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갑질의 핵심 원인은 ‘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비뚤어진 자만심’의 발로라는 뜻이다. 갑질문화를 줄이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겸손과 배려의 원칙’이 권력기관을 비롯한 힘센 조직에서부터 싹터야 한다.


 하루아침에 갑질문화를 바꿀 수 없겠지만, 모든 사회 조직, 학교가 노르딕 문화처럼 평등과 공존을 중시하도록 변화해야 한다. 갑질문제는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질적인 민주화가 직장, 조직 민주화로 승화돼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