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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엘리트 카르텔 부패를 어찌할꼬

 나라 안팎 부정부패 전문가들의 경종이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국의 부패유형은 매우 흥미롭다.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다. 많이 배운 놈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국민을 등쳐먹는다.” 미국 정치학자인 마이클 존스턴 콜게이트대 교수가 수년 전 한국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툭 터놓고 꼬집었던 발언이다.


 존스턴 교수는 국가의 부패유형을 네가지로 나눈다. 1단계인 ‘독재형’은 중국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 주로 나타난다. 2단계 ‘족벌형’ 역시 러시아 필리핀에서 보인다. 3단계인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국가로는 한국과 함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가 꼽힌다. 4단계 ‘시장 로비형’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이 속한다. 한국 부패문제에 대해서는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존스턴과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기득권층 짬짜미형 부패’라고 부른다.


 ‘가장 뛰어난 자들의 부패가 최악의 부패다’라는 속담이 중세 로마 시대부터 전해오고,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도 그 냄새가 고약하다”라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부동산투기 의혹 사태를 계기로 속속 다양하게 드러나는 부동산 비리도 ‘엘리트 카르텔형’으로 분류된다. 여당 현직 의원 6명에 이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전직 보좌관, 송철호 울산시장 배우자, 청와대 경호실 과장, 임종성 의원 가족과 지인의 투기 의혹이 폭로되는 걸 보면 이런 유형이 그대로 부각된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스마트국가산업단지 예정지 개발 관련 정보를 미리 입수해 부동산투기를 한 정황이 들통난 것도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다.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는 갖가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규제 권력을 가진 공무원이 은퇴 후에 자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피규제자를 봐준다. 유력 정치인이 상호 도움을 은연중에 내비치며 자녀를 특정 기업에 편법으로 취업시킨다. 교수가 동료 교수의 자녀를 실험실 인턴으로 써주고 엉터리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지방 토호 엘리트들의 토착부패는 오래전부터 경고음을 냈으나 법망을 벗어나 있다는 설이 널리 퍼졌다.

 

 낙하산 인사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중 가장 악성으로 지목된다. 선물 경조사비 밥값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가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 마피아, 정치 마피아를 비롯해 직능별로 결성된 온갖 ‘마피아’들이 결속하는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는 끼리끼리 문화의 부정적 진화로 나타났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한국을 부족주의 국가로 명명했다. 한국 엘리트의 본질적 속성이 부족주의라는 뜻이다. ‘공정’을 목숨처럼 여겨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직원 10여명을 대기업에 재취업시켜 주면서 ‘억대 연봉 지침’까지 기업에 정해준 사실을 실례로 들었다. 보수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라는 박근혜정부 못지않게 진보 정권인 문재인정부에서도 ‘운동권 부족주의’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인 결과가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속편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조국 사태’ 이후 ‘우리 편은 부정부패에 연루돼도 문제가 없다’며 싸고도는 풍조도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를 키우기 쉬운 토양이 됐다. 최근 2년간 LH가 한달에 한번꼴로 직원들의 부정부패를 적발했으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투기는 한건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이를 증명한다.

                                                                   

  대통령의 인사 기준부터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를 타파하기 어렵게 한다. 부동산투기 탈세를 비롯한 인사검증 7대 기준 미준수는 ‘우리끼리는 괜찮다’는 걸 묵인하는 듯하다. 외려 7대 불가 사유 가운데 몇가지가 포함돼야 발탁될 수 있다는 냉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에 나갈 고위공직자가 부동산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거의 하나같이 ‘노후대비용’이라고 둘러대고 빠져나간다.


 국제기구가 집계하는 공직사회 부패지표를 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0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33위를 기록했다. 다소 개선되는 추세이긴 하나 경제력과 전체 국력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3위다.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를 낳는 요인은 이기주의에 매몰된 국회와 정당, 비대한 정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사법부가 모두 꼽힌다. ‘김영란법’으로 통칭하는 ‘부정청탁금지법’에 마땅히 포함돼야 했으나 핵심인 이해충돌방지법은 국회의원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쏙 빼놓았다. 선거를 앞두고 LH사태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부랴부랴 이해충돌방지법도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재산공개 대상을 모든 공직자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지켜봐야 한다.


 법과 제도를 어느 정도 갖추어도 그물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실행 의지가 관건이다. 권력형 엘리트 부패를 막으려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편은 괜찮다’는 풍조가 이어지면 그마저 신뢰를 잃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