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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어두운 곳 감추면 세상은 아름다울까

 대통령 직속 국가청렴위원회가 황당한 언론관을 드러내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전신인 청렴위는 2007년 ‘언론이 국가기관의 비리를 취재·보도하면 국가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취재에 협조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청렴위나 권익위는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비리를 적극 고발해 부패와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중앙행정기관이다. 그럼에도 청렴위가 외려 설치 목적에 반해 국가기관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것처럼 비쳐 논란을 불러왔다. 투명하게 밝혀야 할 부정부패를 감추면 청렴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발상이라는 질타가 뒤따랐다.


 적폐청산 이후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보여주는 행태는 도덕적 우월감 강박관념에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 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부터 지금까지 전개된 검찰개혁 드라이브와 관련한 정치행위는 궁극적으로 정권비리 수사 막기와 다름없다는 오해를 풀기 어려워 보인다.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평가 조작의혹 감사 때 나타난 여권의 압박도 같은 차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을 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권 차원에서 본질이 달라졌다고 보기 힘들다. 조 국 일가 비리,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같은 민감사안 수사 방해는 찾아보기 드물 만큼 노골적이었다는 여론이 많다.

                                                                        


 검찰총장 쳐내기 실패로 끝난 법무부장관의 무리수, 수사팀 해체로 이어진 검찰인사가 이를 입증하고 남는다. 추 장관이 지난해 두 차례 단행한 검찰간부 인사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하지 말라’는 의중을 검찰조직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총장의 신임을 받는 인사들이 일제히 지방이나 한직으로 밀려난 반면, 추 장관 라인 검사와 정권에 협조적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영전했기 때문이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송철호 시장 등 13명이 기소됐으나 핵심 관련자 수사는 중단된 상태다. 수사팀은 추 장관의 인사로 해체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1월 29일 검찰이 기소한 뒤 1년이 다 됐으나 재판이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사법부마저 의심받는 사건으로 바뀌었다. 1조6000억원 금융사기인 라임자산운용 비리 의혹 사건, 5000억원대 피해를 낸 옵티머스 펀드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 수사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검찰이 최근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추가로 불구속기소했지만 로비 대상자들에 대한 수사확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라임사태 등 금융사건에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돼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추 장관이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증권범죄합수단 폐지 후 검찰의 증권범죄사건 처리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통계가 최근 나왔다.

                                                                          

 대통령과 특수관계로 알려진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 사건은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불법이나 도덕성 의혹이 제기되면 탈당을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치권 관행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 임금체불과 ‘먹튀’ 논란이 불거지자 탈당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가 실패하자 여권은 또 다른 안전장치로 검찰 수사권 폐지라는 극약 처방까지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올해 1월부터 검찰에 남은 6대 범죄 수사권마저 경찰로 넘기거나 별도 수사기구를 만들어 이관하기로 했다. 애초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단행한 수사권 조정까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담긴 것 같다.


 이용구 법무차관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봐주기 의혹의 도마 위에 오른 걸 보면 올해부터 더 막강해진 경찰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진 상태다. 감춰야 할 비리가 얼마나 많아 이처럼 무리하게 나서느냐는 눈빛이 날카롭다.
 감사원이 에너지전환 정책 수립 절차 추가 감사에 착수하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감사원장을 거칠게 비난하고 민주당에서 지원사격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대통령 친인척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 비위 행위를 감시할 목적으로 설치한 특별감찰관실은 유명무실하다. 대통령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아서다. 특별감찰관은 2014년 여야 합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신설한 기구다. 특별감찰관이 있었으면 적지 않은 청와대 의혹 사건의 예방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전 대통령도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내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비극은 막았을 게다.


 이제 막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대통령과 측근 비리 처벌을 방지하는 퇴임 후 보장 보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각도 상존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일갈했다. 2016년 서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은 어두운 곳을 비추라고 타올랐다. 더러운 곳을 가리고 어두운 곳을 감추면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