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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일자리 만드는 자리의 존재 이유

 남미 볼리비아의 해군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의 대명사다. 볼리비아는 해군이 지켜야 할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다. 그럼에도 해발 3800m의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기지를 두고 수천명의 해군병력과 군함을 보유하고 있다. 군함도 한두척이 아니라 수십척의 초계함, 십여척의 수송선, 훈련선, 병원선, 잠수함까지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도 한때는 태평양 연안의 영토를 보유했으나 1879년 칠레와 치른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바다를 잃고 말았다.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관은 높은 이름값에 비하면 볼리비아 해군만큼이나 존재감이 떨어져 보인다. IMF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닥친 최악의 실업자수와 잇단 대증요법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가 일자리 늘리기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쏟아부은 돈이 37조원에 달하지만 취업자수는 2018년보다 22만명 가까이 줄었다는 통계는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도 충격적이었다. 그전에도 일자리 위기는 정부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업무지시 1호’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일자리가 문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임을 선포하는, 기대가 만발한 장면이었다. 문 대통령은 곧이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일자리상황판도 만들어 공개했다. 청와대 조직으로 일자리수석비서관도 신설해 희망찬 출발을 알렸다. 청와대 부서 명칭에 ‘일자리’가 들어간 건 사상 최초였다. 하지만 성과가 변변찮은 일자리수석은 세번째 바뀌었다. 전임 일자리수석 가운데 한 사람은 낙하산을 타고 한국조폐공사 사장 자리에 안착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일자리위원회에도 세번째 장관급 부위원장이 들어섰다. 일자리위원회의 존재감 역시 도드라지지 않는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회의를 열고 아이디어를 모았으나 내세울 만한 결과물은 드러나지 않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얘기와는 정반대로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였노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부가 문 대통령의 지시로 올 1분기 중에 공공 부문에서 90만개 이상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모두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땜질식 ‘단기 공공일자리’에 불과하다.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디지털 일자리 사업 규모 6만명 확대와,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 2년 연장을 뼈대로 한 대책을 지난 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자리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건 꼼꼼히 따지지 않더라도 일자리 기구의 존재와 인과관계는 물론 상관관계도 그리 없어 보인다. 일자리는 경제 전반의 문제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부문별 개혁과 따로 놀아 화음을 내지 못했다. 가장 먼저 강력하게 추진했던 ‘비정규직 제로’는 선언적인 구호임을 고려하더라도 일자리 늘리기에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상징적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고용증가보다 청년층이 가장 민감한 공정성 논란을 불러왔다. 역설적으로 문재인정부 출범 4년 가까이 비정규직이 도리어 94만5000명 늘었다는 통계가 제시되기도 했다. 비정규직으로 잡힌 기간제 근로자가 대규모 포착된 게 기간제 근로자가 실제로 증가한 수치가 아니라 기간제로 답변한 응답자가 증가한 것이라는 정부의 반론이 있었으나 아픈 곳을 찔린 것은 분명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융통성이 부족한 주 52시간제 시행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다수 전문가가 수긍한다. 여권 안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을과 을의 전쟁’을 불러왔다는 데 동의한다.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 현실에서 노동비용이 올라가자 고용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정부가 최저 시급 1만원 목표에서 물러났다. 논란이 많은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소득 증가와 내수 촉진, 경기 부양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끌어내는 데 실패해 고용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격언은 여기서도 통한다.


 1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100만명 가까이 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취업자가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이 뽑으려는 인력의 수요 공급 불일치 때문이라는 한국은행의 지난주 분석이 정부가 생각을 가다듬게 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면 서비스업 일자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정보기술(IT) 기업, 제조업 분야 기업에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수급 불일치(미스매치) 지수가 2배 늘어났다고 한다.


 재정을 통한 고용확대 정책은 단기 임시직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민간경제 활력을 높여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져야 바람직하다. 일자리 위기도 정부의 통합적 정책사고 부족에서 초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컨트롤타워 부재를 실토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칫 문재인정부가 남은 1년여 임기 안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리지 못한 ‘일자리 정부’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볼리비아 해군은 존재감은 부족하지만 빼앗긴 땅을 되찾아 태평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권토중래 정신을 지녔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