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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미국 최악 대통령의 반란적 퇴장

 ‘민주주의 맹주’인 미국 역사상 최악 대통령으로 제임스 뷰캐넌(15대, 1857~1861), 앤드루 존슨(17대, 1865~1869)과 워런 하딩(29대, 1921~1923)이 꼽힌다. 세 사람은 평가기관에 따라 순서가 다소 바뀌지만 거의 어김없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뷰캐넌과 존슨은 공교롭게도 부동의 최고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임자와 후임자다. 가왕 조용필 바로 앞뒤에 노래를 부르는 아마추어 가수와 같은 불운아여서가 아니라 실제로 무능한 지도자였다.


 뷰캐넌은 노예제 옹호하고 나라를 분열시켜 남북전쟁의 도화선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민주당 소속 부통령이었던 존슨은 공화당 대통령 링컨이 암살되자 대통령직을 자동 승계해 유일무이하게 선거 없이 정권교체를 한 인물이다. 존슨은 의회권력을 쥐고 있던 공화당에 맞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론분열만 일으켰다. 이처럼 최악 대통령의 특징은 국가통합을 해치고 분열을 조장한 지도자들이다.


 하딩은 가장 무능하고 부패한 막장 행적으로 일관한 최악 1위 대통령이었다. 하딩은 포커게임 술 골프 여자사냥만 즐기다 재임 중 돌연사했다. 친척과 포커 친구들을 요직에 대거 앉혀 수많은 독직사건을 일으켰다. 경제위기 앞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대공황의 물길을 텄다. 금주법을 만들어 놓고는 압수한 밀주를 백악관에 들여와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워런 하딩 미국 29대 대통령>

 

 그는 ‘대통령처럼 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공화당 후보로 옹립되고 선출됐다. 큰 키와 로마인 조각 같은 얼굴에 저음의 굵은 목소리가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아 60%라는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외모만 보고 사람을 선택하는 잘못을 일컫는 ‘워런 하딩의 오류’라는 심리학 용어의 모델이 됐다. 그는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맡지 않았어야 했다”고 친구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이런 최악의 대통령들을 제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는 이미 2018년 미국정치학회(APSA)가 뽑은 가장 나쁜 대통령 1위로 올라섰다.


 트럼프의 최대 과오는 미국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를 유린한 일이다. 임기 내내 이어진 그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는 거짓과 선동을 동반한 대선불복에서 정점을 찍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를 불법적으로 뒤집기 위해 민주주의 상징인 연방 의사당을 점령한 것은 최악의 반동이다. 이전까지 44명의 대통령 가운데 누구도 민주주의 정신을 무너뜨린 사례는 없었다.


 트럼프의 거짓선동 정치 폐해는 2016년 대선 때부터 전세계적인 파장을 몰고왔다. ‘가짜뉴스’ ‘탈진실’이라는 용어가 지구촌에 들불처럼 번진 것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2016년부터였다. 언론 팩트체크팀이 매일 트럼프 발언을 검증하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 팩트체크팀이 2017년 1월 취임일부터 지난해 9월 중순까지 집계한 트럼프의 거짓주장만 무려 2만3000여건이었다. 5분에 한번꼴로 거짓말을 했다는 통계다.


 미국 역사학자 700여명이 역대 대통령 순위 평가보고서를 내면서 밝힌 사실 하나가 눈길을 끈다. 성공한 대통령일수록 정직성이 높았다. 능력과 정직성은 별개가 아니며 사회를 통합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지도자의 정직성이라고 학자들은 결론 내렸다. 국민을 속이지 않아야 성공한다는 이 보고서는 트럼프에 대입해도 틀리지 않는다.

                                                                       


 극우 포퓰리즘을 동원한 극단적인 편가르기 정치가 광적인 수준에 이른 것도 트럼프 때였다. 남북전쟁 이래 이처럼 나라를 분열시킨 적은 없었다. 아무리 거짓말투성이고 국정이 엉망이어도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광신적 팬덤정치는 ‘트럼피즘’으로 살아남아 미국 민주주의의 기생충이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소름을 끼치게 한다.


 친조카가 소시오패스로 규정했듯이 트럼프는 애초부터 공인의식이나 정치철학 따위는 없었다. 대통령은커녕 어떤 공직도 맡아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에게선 정부의 기반인 제도와 규칙에 대한 존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하루아침에 해임하고 마는 인사 전횡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상식과 규율까지 깡그리 무시했다. 돌출행동과 자극적인 언사만이 그의 등록상표로 남았다.


 트럼프는 코로나19 사태로 1948년 공식 실업률 집계 이후 최고치인 14.7%의 실업률 기록을 남겼다. 코로나19로 사망한 미국인이 37만명을 넘었으나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나 치러 다녔다. 1945년 이후 미국의 모든 전쟁 사망자보다 많다. 트럼프는 재직 중 두번 탄핵소추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도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어렵사리 쌓아 올린 민주주의도 ‘아시타비(我是他非) 정치 지도자’와 묻지마 지지자들이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트럼프가 실증해 보였다. 남의 일만 아닌 듯하다. 독일 역사학자 한스 위테크는 “신은 누군가를 멸망시키기에 앞서 뜨거운 권력을 누리게 한다”고 경고했다. ‘선출된 권력의 오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한국의 집권세력도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