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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인공지능 시대의 토건공화국

 인공지능(AI)이 미래의 최대 먹거리라는 사실은 이미 대세다. AI와 무관한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다. 재일동포 기업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한국은 앞으로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 얘기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교육 정책 투자예산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전폭적으로 AI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중국 화웨이가 그렇듯이 글로벌 경제전쟁의 가장 무서운 무기가 AI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두 기관차 미국과 중국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인 AI에 투자하는 돈과 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경쟁상대인 중국은 국가와 기업이 똘똘 뭉쳐 AI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같은 4차산업혁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IC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은 상대적으로 굼뜨다.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발등의 불인 줄 깨닫지 못한다. 영국 옥스퍼드 인사이트와 국제개발연구센터가 발표한 ‘정부의 AI 준비도 지수’에서 한국은 26위 (2019년 기준)로 아랍에미리트 말레이시아에도 뒤처진다.

                                                            

  AI 분야 국가 차원 투자지원을 뜻하는 정부전략 부문의 한국 순위는 54개국 중 31위다. 한국정부는 2019년 말 ‘AI 국가전략’으로 10년간 1조3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이 2018년부터 3년간 ‘차세대 AI 발전계획’에 17조원을 투자한 것과 견주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한국은 AI 인재도 부족하다. 글로벌 AI 인덱스 인재 부문은 1위인 미국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연구 수준도 22위다. 기업 주도인 미국과 국가 주도인 중국은 AI 인력 육성에 사활을 건다. 캐나다 엘리먼트 AI가 발표한 ‘글로벌 AI 인재보고서 2020’에 따르면 한국의 AI 전문인력 규모는 세계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전세계 AI 전문 기술인력 47만7000여명 중 한국 국적 인력은 2500여명에 그친다. 그나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책기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국가 AI 연구지수’에서 한국은 91개 나라 가운데 14위권이다. AI 선도국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토건공화국’ 건설에 여념이 없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10조원이라는 거액이 들어가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여건에서 가장 뒤떨어진다’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의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를 무시하고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은 애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예산이 투입될 게 분명하다. 토목사업 선례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 미래의 최대 먹거리 AI에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 투자의 1/10밖에 들이지 않는다.

        
 거기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재인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사업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공항 철도 도로 건설사업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내년에 더 늘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명분은 한결같이 ‘국가균형발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계를 보면 현재까지 문재인정부의 예타면제사업은 88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합한 것보다 많다. 두 보수정부의 예타면제사업 합계는 83조9000억원이다.

                                                               

 
 이명박정부의 22조원짜리 4대강사업을 ‘토건공화국’이라고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비판했던 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또 다른 내로남불의 전범을 보는 듯하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진보진영이 개발 규제 차원에서 추진했던 제도다. 1999년 김대중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다.

 

  사실 예타면제여서 비판받는 것보다 나라 재정의 기조와 지향점이 더 큰 문제다. 그렇지않아도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빚을 내야 할 판이다. 선택과 집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은 시작하면 잘못돼도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물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고추 말리는 데만 쓴다’는 비아냥을 듣는 공항이 좁은 땅덩어리에 널려 있는데도 새 공항을 몇개나 더 짓겠단다. 코로나19와 4.15 총선 압승 이후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몇조원쯤은 가볍게 여기는 듯한 모습이어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