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4관왕 영화 ‘기생충’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것은 불평등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어서다. 반지하와 저택에 사는 두 가족은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생생한 표상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한국의 불평등지수(피케티지수)는 8.6으로 전년보다 0.5나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선진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스페인 6.6, 일본 6.1, 영국 6.0, 프랑스 5.9, 미국 4.8, 독일 4.4 등이다.
한국의 ‘피케티지수’는 최근 10년간 줄곧 악화했다.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급증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피케티지수는 7.6~7.8 수준이었다. 이 지수는 ‘21세기 자본’이란 저서로 이름을 떨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만들었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수의 사람이 고가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인 이 수치가 높으면 평균적인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재산을 늘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피케티지수 상승은 부동산 가격 급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걱정스러운 점은 일본과 스페인에서 부동산 거품이 정점을 찍었던 때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거품이 극심하던 1990년 일본의 피케티지수는 8.3이었다. 내년에 나올 2020년 한국의 피케티지수는 2019년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 하루 전인 22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산 불평등에서 주택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서울에 사는 20~30대 무주택 가구는 극심한 자산불평등을 겪고 있다. 주택가격이 최근 급등한 서울 지역은 소득 불평등도보다 자산 불평등도가 훨씬 심각하다. 앞으로 소득불평등 문제보다 자산불평등 문제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의 우려를 입증하는 자료다.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주병기 교수의 ‘개천용지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상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주 교수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란 논문에서 명명한 ‘개천용지수’는 한국이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음을 수치화한 것이다. 1990년 이후 26년 동안 한국의 기회불평등 정도는 두배 가량으로 커졌다. 1990년 19에서 2016년 34로 높아졌다.
이 지수는 소득하위 20%인 부모를 둔 사람이 소득상위 20%로 올라설 확률이다. 기회가 평등했으면 상위 20%에 진입했을 하위 20% 출신 100명 가운데 34명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없어진 비율이라고 봐도 좋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이 “용이 돼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막상 자기 자녀를 용을 만들려고 했다고 도마에 올랐다.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했다. 불평등과 자수성가를 모두 경험한 미국 심리학자 키스 페인은 저서 ‘부러진 사다리’에서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평등은 진보정권이 보수우파정권보다 강조하는 가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법이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라는 국정 목표를 세운 문재인정부가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불평등지수와 함께 올해 최대 화두였던 ‘공정’ 문제에 관해서도 압도적인 다수가 한국 사회의 불공정을 지적했다. 최근 한 언론사의 창간 기념 여론조사 결과,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국민이 10명 중 7명꼴이었다. 그 가운데 ‘법 집행’이 가장 불공정하다는 답변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피케티가 불평등의 해결방법을 ‘경제’ 아닌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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