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상징어는 ‘직절허심(直節虛心)’이다. 순서를 바꿔 ‘허심직절(虛心直節)’이라고도 한다. 속이 비고 곧아 절개가 있는 나무여서다. 대나무가 소나무와 더불어 송죽지절(松竹之節)의 짝을 이루는 것도 차디찬 겨울을 견디며 푸른 잎을 굳건히 간직하기 때문이다. 속이 빈 것은 헛된 마음을 버려서이고,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건 정절을 지키기 위한 표상이다.
겨우내 잎이 푸른 것은 고결한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킨 것이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라고 대나무를 상찬했다.
대나무는 땅 밖으로 싹이 나기 전 땅속으로 먼저 자란다. 대나무 씨앗은 1년은커녕 2~3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곳에 대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즈음, 5년째 되는 해에 딱딱한 땅을 뚫고 죽순을 내밀기 시작한다. 죽순을 틔우기 전에 4년 간이나 뿌리를 십수미터까지 뻗는다. 땅속의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빨아올릴 수 있도록 촘촘하게 뿌리를 뻗어 나간다. 대나무밭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탕이 여기서 길러진다.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하루에 무려 30~65㎝씩 성장한다. 이렇게 석달이면 16~26m를 자란다. 약 5주 만에 울창한 대나무숲을 이룬다. 줄기와 잎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뿌리를 튼튼히 해놓은 준비성 덕분에 대나무는 가뭄이 심하고 맹렬한 추위가 닥쳐도 죽지않는다.
대나무는 60~120년의 평생 단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만에 피고 곧바로 지고 만다. 대나무는 줄기가 시들어갈 무렵 꽃이 핀다. ‘대꽃처럼 귀하면서도 아픈 꽃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생의 마지막에 후손을 위해 꽃대를 밀어올리고선 그 자리에서 모두 말라죽는다. 한 나무가 꽃을 피우면 너도나도 따라 한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같은 해에 꽃을 피우고, 어느날 갑자기 대나무숲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일생에 단 한번 피는 흰꽃이 지면 씨앗은 떨어져 땅속으로 들어간다. 엄마 대나무는 살아서 정성껏 광합성 작용을 해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훗날 아기 대나무를 위해서 땅속에 자양분을 저장해둔다. 성장속도가 보통 나무의 수백배에 이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번에 쑥쑥 자라나버리니 나이테도 없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는 유일한 나무다. 대나무 줄기는 비어 있으므로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한다. 중간중간 매듭을 짓고 자라기 때문에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성찰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대쪽같다’는 말은 예부터 절개와 정절을 표상하는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국가 지도자는 어느새 스스로 설정한 정의와 공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비판을 비켜나지 못한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37회나 언급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시민이 더 많은 것 같다.
법치주의의 보루인 검찰에서는 ‘대쪽검사’들이 사라지고, ‘애완견검사’ ‘어용검사’들로 채워졌다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떡검(떡값 받는 검사), 섹검(성추행 검사), 벤츠검사, 스폰서검사, 정치검사 같은 말들이 상징처럼 됐던 시절을 벗어나는 듯하지만, 또 다른 수식어가 자리잡는다.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로펌도 마다한 대쪽검사’로 소개됐던 검사는 여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대쪽같은 공직자’라고 떠받들던 인물들은 축출대상으로 전락했다. ‘한국의 피에트로’(이탈리아의 추상같고 깨끗한 검사)라는 별칭이 붙는 청렴강직 검사는 검찰 역사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더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의구심을 받는 사법부의 판사들도 ‘대쪽’이란 수식어를 그리워지게 한다. 지나치게 대쪽 같아서 악명이 자자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후 대쪽 법조인에 대한 그리움은 커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문득 떠오른 단상이 ‘대쪽같은’ 공직자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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