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생색나는 개혁을 해보고 싶으면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책사 얘기를 먼저 떠올려 보면 좋겠다. 촉나라 유비의 제갈량에 비견된다는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의 셋째아들인 2대 황제 오고타이가 개혁 방안을 자문하자 명언을 들려준다. “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가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합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오고타이가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4.15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180석을 얻은 여권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대표 체제 출범과 때맞춰 성찰할만한 지혜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총선 이후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는 시간에 쫓기는 듯 개혁을 명분삼아 독주를 거듭해왔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부동산 법안을 비롯한 각종 의안을 일방 처리했다. 충분한 검토없이 통과된 개혁 법안들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비판까지 받아 정당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업보였다.
하지만 특정 교회와 8.15 광화문집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해 지지율이 다시 반전되자 여당은 말 폭탄과 손봐야 할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광훈방지법’ 5건과 함께 ‘박형순금지법’까지 발의해 총공세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불응하는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냈다.
김성주 이원욱 오영환 전용기 의원도 각각 감염병의 예방·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 강화된 감염병 관련법은 얼마 전에 개정됐다. 최고위원 후보였던 이원욱 의원은 광화문집회를 허용한 판사를 ‘판새(판사 새X)’라고 비하하며 그의 이름을 딴 ‘박형순금지법’(집회시위법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도 대표로 냈다. 언론·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의 소지가 커 보인다. 모든 법안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법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는 것은 악덕을 교정하기보다 도리어 일으킨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종 통과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으나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부동산 3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돼 시행되고 있음에도 부작용이 우려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보완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검토되지 않은 일부 부동산 대책 법안들이 ‘반헌법’ 논란을 빚자 김태년 원내대표가 “정책위원회 검토를 먼저 받으라”며 제동을 걸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개별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 관련법들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도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끊이지 않는 논란성 언행과 검찰 인사는 검찰개혁의 목적을 점점 더 의심스럽게 만든다. 추 장관의 언행은 ‘인성’의 문제로 비약했다. ‘사람의 성품은 역경을 이겨낼 때가 아니라 권력이 주어졌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철언을 입증하듯이 말이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 장관의 처신은 편파수사 지침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의과대학(공공보건의료대학) 문제도 시기와 공정성 시비를 낳는 신입생 선발 요강 의혹 등으로 선의(善意)를 훼손한다. 의료계의 이기주의가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이를 여론전으로 손보려고 의도적으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시점을 택한 게 적절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만리장성 축조보다 어려웠다는 거대 토목공사 싼샤댐의 설계자 장샤오형은 극심한 반대를 고마워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97년 싼샤댐이 완공됐을 때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면 위대한 일을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파들이 집요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촛불정부의 상당수 개혁정책이 자부심과 달리 삐걱거리거나 부작용이 만만찮은 까닭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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