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초선의원들의 ‘처음’은 명암이 엇갈린다. 몇몇 야당의원들은 낡은 관행을 깨고 산뜻한 바람을 일으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열린민주당 소속 초선의원들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표현처럼 ‘거수기’라거나 정부 방패막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심 대표는 임대차 3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초선의원 151명(전체의 과반)이 처음으로 경험한 임시국회 입법과정에서 여당 초선의원들은 생각이 다른 야당과 대화와 타협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배우지 않을까”라고 쓴소리를 냈다.
조정훈 시대전환당 의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정훈 의원만큼만’이라는 상찬을 얻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신선미를 풍겼다. 범여권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한 조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정책인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가 ‘쓰레기 같다’며 예의를 갖춰 경제부총리를 몰아붙였다. 국무총리에게도 목청을 높이지 않은 채 ‘8월 17일 임시공휴일’이 중소기업 직원, 일용직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따져 갈채를 받았다. 조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칭 혁명’을 단행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보좌관들에게 ‘의원님’ 대신 ‘정훈님’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호칭을 수평적으로 바꾼 것은 특권 누리기에 여념이 없던 국회 관행을 부수는 첫걸음과 같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은 ‘따라하기 증후군’을 낳았다. 윤 의원의 연설은 저격수로 명성을 날리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통합당이) 이제야 제대로 한다”고 칭찬했을 만큼 독보적이다. 야당이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 장관들을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잘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틀이었다. 그의 견해가 정답이냐는 논란이 있으나 색깔론과 막말 없이도 논리적이고 호소력 있게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1대 국회 최연소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복장 관례’를 깨부순 공로가 작지 않다. 사실 류 의원이 붉은색 계통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온 게 국회 권위에 맞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부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불가’ 발언에 대한 불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일반인들의 출근복인 청바지 차림으로 등원하기도 했다. 국회 안에선 남성 중심의 국회 관례에 경종을 울렸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의원 배지를 거의 달지 않고, 사무실에도 보좌관들보다 먼저 나온다. 첫 법안으로 ‘비동의(非同意) 강간죄’ 발의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이들과 달리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이른바 ‘조 국 키즈’ 초선의원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퇴출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 호위대 같은 언행으로 시선을 끌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 때 추 장관을 향해 “연일 노고가 많으신데 저까지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라고 했다.
최 의원은 추 장관의 ‘법무부 공지 사전유출’ 사건으로 제2국정농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당선 일성으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검찰과 언론에 으름장을 놓았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에서 통합당 의원들이 추 장관에게 공세를 펴자 “예의를 갖춰 질문하라”며 ‘호위’ 역할을 자청했다. 김용민 의원도 흡사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통합당을 공격해 ‘정부 호위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의원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대정부 질문 취지와 다른 발언을 이어가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본회의장이 난장판이 됐다. 김상희 국회부의장까지 나서 “대정부 질문에 맞는 질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소주 ‘처음처럼’은 글씨 저작권자인 진보지식인 신영복 선생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됐다. ‘우리 시대의 스승’이란 수식어가 붙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적 술에 내 글씨가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면서 선뜻 브랜드 이름 사용을 승낙했다. 선생은 ‘처음처럼’이란 잠언집 ‘여는 글’에서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라고 했다. 거대여당 독주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도 모자라 새내기 의원들까지 더 낡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환골탈태를 내세운 국회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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