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만 하고 끝나는 G7, G20 정상회의는 그만두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10개 나라 회의체 D10(Democracies10)으로 바꿔라.’ 2013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달아 이런 주장을 들고나왔을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때 D10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호주 한국에 유럽연합(EU)을 포함한 것이었다. 한국이 회원국으로 언급됐으나 당시 박근혜정부나 한국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해 6월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G7+러시아 정상회의를 앞두고 ‘G8은 잊어라. 이제는 D10시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G8보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 동맹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경제적 갈등이 혼재하는 G8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유를 댔다. 타임은 그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직후 D10 회의체를 제안했다.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격차가 큰 G20은 화급하고 민감한 정치·군사적 국제 현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는 게 대안의 사유다.
7년 전 조명받지 못하던 D10의 실현 가능성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로 연기된 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을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천명한 게 첫번째 계기가 됐다. 폼페이오 장관도 23일 캘리포니아주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연설에서 ‘생각이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D10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D10 구성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지도자들과 언론의 논리를 그대로 들고나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G7은 잊어버리고, D10을 만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책임 공방, 홍콩 국가보안법 갈등,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등 현안에 대해 G7과 G20이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D10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세계평화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신뢰 동맹체여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은 7년 전의 주장과 거의 같다. 다른 점은 회원으로 EU 대신 인도가 들어간 것이다.
이보다 앞서 존슨 영국총리는 지난 5월 말 중국 화웨이를 대신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공급업체를 찾기 위해 ‘D10 동맹’ 구성을 제안했다. 영국이 주도하는 5세대 이동통신용 D10은 기술적인 협의체이지만,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G7 추가 초청 발언과 같은 날 발표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D10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하든 상관없이 진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7년 전부터 한국이 D10 회원국으로 거론된 것은 종합적인 국력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계 대국이 되기 위한 3가지 필수요소로 생존력, 발전력과 더불어 국제적 영향력이 꼽힌다. 머지않아 한국은 선택의 순간을 맞아야 한다. 세계 주류 정치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퇴보를 각오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의 경쟁력은 동맹체를 떠나서는 축적되기 어렵다. 한국을 포함한 G7 확대 개편에 일본이 견제구를 던지고 있으나 끝내 막지는 못할 게다.
한국의 고민은 D10이 궁극적으로 민주국가 진영의 중국 견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린폴리시는 D10이 반중국전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미국의 속내는 이미 드러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새로운 민주주의 동맹이 중국 공산당의 패권 전략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세계는 이미 ‘경제 냉전’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경제 제1법칙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중국은 이미 반(反)화웨이 전선에 대응해 맨큐의 제1법칙을 경고장에 담았다. 5G 선택도 국가 간 문제를 배제할 수 없지만, 세계 최고 지도자들의 회의체인 G7과 G20을 대체하려는 D10은 차원이 다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선택할 수 있는 만만한 카드는 없다. 국익을 사안별로 나눠 원칙을 정해 일관성 있게 대응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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