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출현하기 오래 전 공룡은 지구상의 최고 포식자이자 지배자였다. 4.15 총선으로 정치권의 공룡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초반부터 무한질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개헌을 빼곤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녀 ‘거칠 것 없다’는 걸 실증하려는 듯하다.
공룡 민주당은 53년 만에 단독 국회 개원을 강행한 데 이어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 몰아내기의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치기에는 설 훈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먼저 총대를 멨다.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면 벌써 그만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느냐”는 설 최고위원의 언설은 민주당 지도부 최초의 노골적인 사퇴요구다. 설 최고위원은 윤 총장 임명 당시에는 “(윤 후보자가) 돈이나 권력에 굴할 사람이 아니다. 검찰총장으로서 적임자다”라고 했다.
윤석열 압박에는 김종민 김용민 신동근 의원 같은 민주당 국회 법사위원들도 가세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진정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어기고 재배당한 것을 빌미로 삼았다. 법사위가 열리면 윤석열을 가장 먼저 부르겠다는 언명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같다. 앞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도 비슷한 주장을 펴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더 적나라하다. 그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라며 사퇴를 다그쳤다.
내년 7월까지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가 여권에는 참기 어려운 1년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살아있는 권력 측근들에게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댄 미국 연방 뉴욕 남부지검장을 끝내 내친 게 응원 깃발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윤 총장을 찍어내려는 것은 신속한 검찰개혁 의지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순조롭게 하려면 걸림돌 같은 윤 총장의 퇴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 나서자 박근혜정권이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나선 때를 연상케 한다.
윤석열을 강제로 도중하차시키는 것은 문재인정부에 부메랑이 되기 쉽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뜻이다. 이미 인사로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낸 상태라 검찰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다름없다. 그나마 윤석열의 이름만으로도 문재인정부의 도덕성을 지켜준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힘 빠진 보수야당은 윤석열이 사퇴하면 조국사태, 윤미향 회계부정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공세를 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오던 관행을 깨고 민주당이 가져온 속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정권 말기 불거질 권력형 비리를 미리 관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말 혈육이 검찰수사를 받았으나 모두 감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수사로 처벌을 받았지만 검찰총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정부는 대통령 혈육이 아닌 우군 비리 수사도 견디지 못한다는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지 않는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처음인 국회의장단 단독 선출에 이어 여야합의 없이 상임위원을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일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일하는 국회’를 더 늦출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당’이라는 비판에 항목 하나를 더 추가한 꼴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더 공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다는 공수처도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검찰과 법관들에게는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언행들이 이어진다. 진보진영의 원로들이 요즘 부쩍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까닭을 흘려들어선 안된다.
쪼그라든 보수야당은 공룡 여당의 발목을 잡고 싶어도 동물국회로 돌아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선거에 대패한 보수야당이 발목을 잡을 수도 없어 공룡 여당의 무한책임만 남았다. 최근 출간된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의 인기 저자 스티브 브루사테는 “공룡의 진화와 멸종 연대기는 인류를 비추는 거울이며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겸손’이다”라고 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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