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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코로나19 이후 재정의 발상 전환

 스코틀랜드 정부가 의회 의사당을 새로 짓는데 2년간 4000만 파운드(약 600억원)를 들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5년간 4억 파운드가 들어갔다. 시공회사는 돌발적인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정부 결정권자들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이 공사에 이미 수천만 파운드를 쏟아부었는데 공사를 그만두면 국민의 신임을 잃고 말 겁니다. 승인해 줍시다.”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졌다. 공사를 포기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최종 공사비는 애초 산정했던 것보다 10배로 늘었다.


 용인 경전철은 ‘세금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붙은 대표적인 토목 행정실패 사례로 꼽힌다. 사업 초기에 수요를 뻥튀기한 데다 민간업자의 이윤 맞추기 사업으로 추진해 약 2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건설비용이 투입됐다. 2013년 개통 후에도 30년간 2조5천억 원에 가까운 추가세금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자 지방자치단체이던 용인시가 재정난을 겪게 된 결정적 원인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개인 욕심으로 추진한 최악의 사업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호명된다. 전형적인 행정실패 사례로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 과정에 채택됐을 정도다. 용인시의 반발로 철회되긴 했으나 여전히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승우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 관한 경험담을 씁쓸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행정부에 요구하는 대형 토목사업은 대개 효율성과 경제성이 그리 없다. 총선이나 대통령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내건 선심 공약이 대다수다. 새 도로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장에 가 보면 얼마 전 뚫린 옆길에도 차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래서 어렵다고 하면 엄청난 압력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여야를 가릴 게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애당초 책정한 예산은 속칭 ‘껌값’에 불과하다. 사업계획을 통과시켜야 하니 우선 최소 사업비를 책정한다. 일단 사업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온갖 핑계를 끌어대면서 설계변경과 더불어 추가 예산을 끌어낸다. 완공 사업비는 애초 예산의 2~3배에 쉽사리 이른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미운털이 박혀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여당과 제1야당이 4·15 총선에서 공약한 도로·철도 건설 공약 사업비 추산액만 100조 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전체 나라 살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나같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신음하는 서민층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끝나면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회가 나서 경제 위기·복지 대책을 창안하는 일이 화급하다. 긴요하고 실질적인 것은 돈 마련이다. 추경 외에도 올해 정규 예산 가운데 불요불급한 부문의 항목 변경을 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해 보인다. 가장 먼저 들여다볼 부문은 사회간접자본 예산이다.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정부 예산보다 9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선거를 의식해 정부안에 없던 지역사업이 줄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끼어든 작은 하천 호안 블록 교체비용도 수십억 원에 이른다. 경제성이 높지도 않은 여비 타당성 면제 공사가 많다. 코로나 19사태로 추진할 수 없게 된 사업, 요긴하지 않은 사업은 미루거나 접어야 마땅하다.

                                                                 


 말썽 많은 실세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 ‘카톡 예산’도 전용 대상으로 삼아 논의하면 좋겠다. 편성 근거도 남아 있지 않은 이 ‘깜깜이 예산’은 따지고 보면 반칙의 산물이다. 쪽지 예산에는 해마다 5천억 원 이상의 혈세가 불공정하게 투입된다. 그런데도 실제 집행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계획 자체가 부실하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최근 예산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반납한 사업도 수십 건에 이른다고 한다.


 국회·지방의회의 관광성 해외연수 같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도 중단해야 한다. 적은 액수이지만 코로나 19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 주민 복지에 돌아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게 도리다. 사법부 예산조차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코로나 19 사태는 지구촌 전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로 불리는 비상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비상시에는 여야 없이 비범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