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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초행길 공수처에 대한 노파심

 처음 가는 길은 설렘과 걱정을 함께 안고 떠난다. 이미 있는 길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이라면 한결 그렇다. 건국 이래 처음 도입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꼭 그런 느낌을 준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의 숙원이자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공수처가 넘겨받아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아보자는 게 도입 취지다.


  4·15 총선 결과가 거대여당 탄생으로 끝나자마자 시선이 공수처로 쏠리는 일이 잇따른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 당선자들 가운데 첫 소감으로 검찰개혁부터 선언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례대표 당선 일성으로 검찰을 겨냥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점찍기도 했다.

 

  종편 방송 기자와 검사장의 유착 의혹을 공수처 수사로 규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검찰 수사가 개시되기 전 잠시 들려왔다. 지난주에는 공수처 설립준비단이 2차 자문위원회를 비공개로 열어 공수처의 조직, 예산, 인사, 후속 법령 정비 같은 현안을 논의했다. 공수처가 오는 7월 출범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수처의 신설 정신이 제대로 지켜지면 기대할 게 수두룩하다. 우선 권력형 비리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동안 검찰이 죽은 권력에만 칼을 더 야멸차게 들이댄다는 ‘부관참시’ 논란이 잦아들면 좋겠다. 유난히 많았던 ‘검찰 제 식구 감싸기’ 구설도 어느 정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검찰 비리는 경찰이 수사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권, 기소독점, 편의주의 같은 막강한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생겼다는 것도 소득이다. 한국 검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공소제기권, 공소유지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사정 권력이라는 악명을 지녔다.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것도 이 같은 기대효과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가 첫 번째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비리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검찰 수사에서 보듯이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가 권력과 지지자들의 등쌀 탓에 얼마나 어려운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공수처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처음부터 보안 유지가 어렵고, 축소되거나 왜곡될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의 하나다. 공수처장 외에 공수처 검사들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규정도 주시할 대상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쉽게 면죄부를 주는 공수처라면 지난날 정치검찰과 다름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


 공수처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독립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공수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 주말 국회방송에서 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공개 경고장을 보냈다. 공수처가 행여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으로 변질되면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통제에 주력할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초안에 없었다가 막판에 끼워 넣은 ‘수사 통보 조항’은 시행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엿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검찰을 비롯한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부분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시행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는다는 반박이 있으나 기우로 끝날 수 있는 운용의 묘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시행 이후에도 보완과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자칫 꼼수로 얼룩진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과격한 전망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공룡 국회권력을 확보한 여권엔 조금만 잘못해도 오만하다는 질타가 쏟아지기 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