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天災)는 단합을 불러오고 인재(人災)는 분란을 초래한다고 한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지진·홍수·가뭄 같은 자연현상으로 재해가 닥치면 우선 한마음으로 뭉쳐 재난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사람이 낳은 재앙은 책임을 놓고 다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놓고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코로나19 슈퍼 전파자가 ‘중국이냐, 신천지교냐’의 논쟁으로 인해 화급한 방역전선에 힘이 집중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서 방역 당국의 사투조차 빛이 바랠 정도다.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은 여전히 중국인 입국금지가 근본대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전파 초기라면 몰라도 방역당국이 지역민에 의한 감염 확산 사실을 역학조사로 입증하고 있음에도 우기다시피 하는 것은 순수성을 의심받기 쉽다.
실제 2월 4일부터 중국인 특별입국 절차를 시행 중인데다 그 가운데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중국인 전면 차단이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건 정부만의 견해도 아니다. 물론 정부의 초기 대처방법에 관한 잘잘못과 책임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과정은 나중에라도 필요하다.
신천지교(공식명칭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가 코로나19 대량전파의 주원인이라는 점은 대부분 국민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외국의 주요 언론도 하나같이 한국의 돌연한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2월 18일 31번 확진자부터 폭발한 신천지교단에서 찾는다. 그런데도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 신천지교단에 조사협조를 촉구하거나 당부하는 말을 아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신천지교인의 연락두절로 방역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특정 교단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당 대표가 특정 교단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면 정통과 이단 같은 종교 프레임으로 엮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당 관계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온적인 태도는 외려 여권 열혈 지지자들의 공격소재가 됐다. 지금 유튜브에서는 신천지교와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관계를 의심하는 주장이 넘친다. 급기야 미래통합당이 새누리당의 당명을 자기가 지어줬다고 자랑했다는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게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 중국인 입국금지가 코로나19 확산저지 비책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모습도 도드라진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는 정부를 융단폭격하듯 비난하는 반면 신천지교단에 대한 당부의 의견기사를 한번도 싣지 않는 편벽성을 드러낸 언론도 있다. 힐문하는 자세도 강파르고 표독한 언사를 깡그리 동원한 듯 격정적이다. 미운 사람이 당한 불행을 고소하게 여길 때 쓰는 ‘잘코사니’라는 말이 연상되곤 한다. 보수진영의 편벽성은 신천지교의 책임론이 부각될수록 정부의 방역실패에 면죄부를 주거나 공격소재의 고갈을 가져올 수 있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상당수 개신교 등이 교단 차원에서 미사 법회 예배를 전면중단한 것과 달리 일부 교회가 정부의 자제요청에 호응하지 않은 것도 분란 요인의 하나다. 보수정당과 일부 언론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낳는 교회의 예배 자제에 대한 권면도 일절 하지 않는다. 지지층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밀폐된 공간 예배의 위험성은 신천지교가 뼈저리게 입증했다. 조호진 시인의 ‘아멘’이라는 시가 새삼스레 가슴에 꽂힌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가 아니고/ 십일조를 내지 않은 죄도 아니고/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눈 맑은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 했다.’
정부와 여권 고위 인사들의 가벼운 언행과 일부 정책혼선이 신뢰상실과 분란요인으로 떠오르는 것도 숙제다.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생활 인프라 위기,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나선 의료진에게 부족한 보호장구 같은 것들 역시 분란의 빌미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보다 화급하고 중요한 건 없다. 여야와 진보·보수진영 가릴 것 없이 편벽과 잘코사니를 넘어서야 한다. 대구·경북을 응원하고, 성금을 보내며, 방역전선으로 자원해 들어가는 이들이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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