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러시아 여행작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중년 남성 둘이 석 잔의 커피값을 내고 “한 잔은 소스페소”라고 말한 뒤 두 잔만 마시고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이어 들어온 네 명의 여성도 다섯 잔의 커피를 주문하고선 “하나는 소스페소”라고 했다. 궁금증을 견디다 못한 작가가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소스페소 커피가 뭐죠?” 주인은 잠깐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옮겨 ‘올해의 번역상’을 받은 작가 코스튜코비치는 카페 주인이 답을 주기 전에 궁금증을 풀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들어와 “여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나요?” 하고 묻자 카페 주인은 “네!” 라는 대답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맡겨둔 커피’라는 뜻을 지닌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는 나폴리만의 독특한 온정이었다. 어렵게 살아도 커피 한 잔은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커피 한 잔도 마시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누군가 짜낸 지혜가 ‘소스페소 커피’다. 여분의 커피 값을 치른 후 영수증을 가게에 비치된 통에 놓아두거나, 창문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는다.

                                                                              

  그 영수증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어르신이나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주로 주문해 마신다. 가게 입구에는 ‘소스페소 커피’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나폴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시작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커피값이 싸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지만, 두 잔 값을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부담되면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고 ‘나눔’이 지속되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던 중 세계 인권의 날인 2010년 12월 10일 이탈리아에서 ‘소스페소 커피 네트워크’란 조직이 만들어진다. 나폴리에 온 관광객들도 이 흥미로운 운동에 동참했다. 나폴리에서는 소스페소 운동이 피자,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식사와 책 나눔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나눔은 이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다양한 음식의 1+1 나눔 운동으로 승화하는 추세다. 캐나다에서는 ‘맡겨둔 식사(suspended meal)’도 등장했다. 입소문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스웨덴, 영국, 불가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지에서도 흡사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구시 수성구의 수성아트피아가 2013년 공연 객석을 기부하는 ‘맡겨둔 티켓’ 운동으로 변형해 펼치기 시작했다. ‘미리내 가게’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운동은 돈을 미리 낸다는 뜻과 은하수의 순우리말 ‘미리내’의 별처럼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중의적으로 담겼다. ‘미리내 가게’는 음식점, 학원, 목욕탕, 미용실, 복싱 클럽 같은 다양한 업종으로 넓혀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익명의 동참자가 많아졌음은 물론이다.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사회적 도움이 간절해지는 계층이 폭증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빈부 격차를 결정적으로 키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크고 오래 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시 짜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게 분명하다.


 ‘맡겨둔 커피’를 본뜬 1+1 나눔 운동이 전국적이고 다양한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몸이 열 개면 좋을 택배 기사나 납입금 채우기에 힘든 택시기사를 위한 설렁탕 한 그릇 나눔은 가뜩이나 힘든 음식점 자영업자들까지 돕는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생일을 맞은 소년소녀 가장에게 동네 빵집의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 책 살 때 서점에 맡기는 한 권의 책 티켓은 젊은이들의 독서와 출판사의 숨통을 틔워 주는 일거양득이 된다.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적은 액수로 큰 뜻을 나눌 수 있는 곳과 방법은 널려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 SNS 운영자들이 캠페인을 돕고 가게들이 호응하면 ‘카페 소스페소’처럼 사회적 체온을 따사롭게 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악용하는 얌체족을 걱정을 목소리도 있겠지만, 작은 부작용은 극복해야 한다. 특정 인물과 상황을 지정해서 나눔을 실천해도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게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