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닐 때가 많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은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서 명문장으로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판 칼럼 필자와 게재한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한 일은 오만과 편견이 교직된 사고의 발로로 보인다. 오스틴은 남녀 간의 애정에 대한 단상을 담았지만, 집권당의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모순으로 읽힌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주장을 펼친 글의 맥락을 보면 쓴소리에 불과하다. 민주적 정당이 쓴소리를 좋은 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의 심판을 요구한 발상은 협량의 정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겁박해 비슷한 사례를 방지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있으나, 비판적인 칼럼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되치기한 것은 프레임 전환을 노린 정치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때 지지자였던 지식인과 논객들까지 ‘나도 고발하라’며 반발한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집권당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에 대한 죽비소리다. 이 같은 민주주의 가치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의 다수가 독재자의 억압에 맞서 몸을 던져 투쟁하며 얻어낸 덕목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명만 무색하게 만들었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권의 자기 부정이라는 질타도 뒤따른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군부 독재자나 보수정권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때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유명한 말을 빼놓지 않고 인용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민주당은 고발을 취하하면서도 진솔한 반성이 없어 비난의 여진을 남겼다. 도리어 고발 취하 메시지에 칼럼의 필자가 특정 정치인 캠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혀 반대 진영에 대한 복수가 아니냐는 편협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두고 표밭을 누비는 민주당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현장의 민심 때문이었을 게다. “오만은 위대한 제국과 영웅도 파괴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어쩌다가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촛불 정부와 집권당의 협량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문제점이 상존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왜곡하고,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보면 진보정권의 도덕적 우월성에 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유재수 비리 감찰무마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의혹 사건 같은 것을 이중잣대로 재단하는 무리수가 상식을 믿는 시민을 뿔나게 했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집권층의 팬덤이다. 폐쇄적인 스타 연예인 팬덤을 방불케 하는 이들은 칼럼 고발 취하 후에도 ‘우리가 고발해줄게’란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에서 칼럼 필자와 신문 고발 운동을 벌인다. 몇몇 인사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신고를 마쳤다고 공표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이 칼럼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 아래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장 낮은 수준의 권고 조치를 내렸음에도 말이다. 지지자들이 다시 고발하면 후폭풍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층 팬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쓰는 언론인과 변심한 지식인을 마녀사냥식으로 난도질하는 지지세력이다. 조국 사태 이후 더욱 심각해진 표적 공격은 무자비하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일수록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면 집단으로 달려들어 단칼에 매도하는 양상이 실로 섬뜩하다. 신상털이를 곁들인 인신공격은 기본이다.
특정 포털사이트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가 뜨면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의 공격 댓글이 달리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여기서 진보의 오도된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애정을 가진 비판적 지지자들의 마음까지 떠나게 하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여당보다 야당의 승리를 기대하는 의견이 처음으로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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