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학자들이 중국 역사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점 가운데 하나가 송나라의 쇠퇴와 멸망이다. 송나라는 당시 유럽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문명과 산업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다. 저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송나라는 인류의 생활에 가장 적합한 왕조다. 만약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중국 송나라 시절로 돌아가 살겠다.”라고 했을 정도다.
송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 용광로, 수력방직기, 강노(剛弩), 물시계, 건축의 아치형 받침대 같은 것들도 송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다. 수력 터빈을 사용하는 조선업, 항해술 역시 탁월했다. 12만5000톤에 이르렀던 1078년 송나라 철강 생산량은 1788년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에 조금 못미쳤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영국보다 500년 앞서 산업혁명을 이루고 남음이 있었다. 그랬다면 세계 역사의 흐름은 판이했을 게 틀림없다. 학자들은 왜 송나라가 산업혁명의 여건이 성숙했음에도 목전에서 주저앉았을까 의아하게 여긴다. 자본주의의 비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송나라의 법률제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는 명저 ‘국부론’에 중국의 사법행정이 백성들의 재부 축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고 썼다. 송의 사법체계가 공정성과 일관성을 잃어 경제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렸다는 의미다.
또 다른 요인은 주자로 대표되는 성리학이다. 성리학이 사농공상 이념을 정착시키는 바람에 관료들은 경제적 타당성이나 효율성에는 시큰둥했다. 돈이 남아돈 송은 몽골, 금, 요나라 같은 주변국의 위협에 군사력 대신 돈으로 평화를 샀다가 결국 쇠망했다.
송나라의 성리학을 신봉한 우리 조상들도 흡사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는 꼭 120년 전에 이를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헐버트 박사는 1899년 뉴욕에서 발행되던 월간지 ‘하퍼스’에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지 13년만의 일이다. 헐버트 박사는 한민족이 만든 세계 최초의 발명품으로 이동식 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 네 가지를 들었다. 한글은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 세계 문화사를 빛낸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고문은 한국의 발명품을 국제사회에 소개한 최초의 글이기도 하다.
현수교를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생소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임진강에 현수교를 지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일본군을 추격하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임진강에 다다랐을 때 명나라 군사들이 안전한 다리가 없으면 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당시로선 기상천외한 현수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미 안데스산맥에 밧줄로 만든 다리가 먼저 있었으나 다리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헐버트 박사의 견해다. 폭발탄도 임진왜란 때 세계 최초로 발명됐으나, 비법은 남아 있지 않다.
헐버트는 놀라운 발명의 성과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사장(死藏)한 것을 한탄했다. 7개 국어를 구사한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헐버트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인 한글을 오래전에 발명해 놓고도 한자에 매몰돼 쓰지 않은 것을 탄식했다. 그는 당시 새로 탄생한 중화민국에 한자 대신 한글을 쓰라고 제안하고, 일본도 자신들의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면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한글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4년 만에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한 천재교육자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품 가운데 한국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도 적지 않긴하다. MP3 플레이어, 커피믹스, 우유 팩, 쿠션팩트, PC방, 밀폐용기 반찬통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해관계집단의 발목잡기와 행정·입법부의 눈치보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숱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치명상을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이달 초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으나 정쟁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외국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세계 최고의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경직성과 무관하지 않다. 각종 규제혁신안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먹거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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