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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조국 사태' 이전과 이후

  우리 국민은 집권세력이 갖춰할 최우선 가치로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것도 압도적인 비율이다. 한 언론의 새해 여론조사 결과다. 국정운영 집권세력이 갖춰야 할 자질로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도덕성’이라는 응답이 ‘유능함’보다 월등히 높았다. 10명 가운데 6명꼴로 도덕성을 든 반면 유능함을 꼽은 사람은 3명 정도에 그쳤다. 이 의견은 성별·연령·지역·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고르게 나타났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층일수록 도덕성의 비중이 더 높다는 점이다. 경제만 잘 돌아가면 된다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비리와 국정농단의 후과로 받아들여진다.


 문 대통령이 취임식 때부터 공정과 정의, 정부의 도덕성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적폐청산을 선결과제로 삼은 것도 국민의 여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우리 정부가 정의와 도덕성을 강조하는 만큼, 작은 도덕적 흠결조차 정부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직자들에게 새삼 당부한 적이 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핵심 측근의 도덕성 문제를 오판하는 바람에 상처를 입은 것은 아이러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도덕성이 아닌 위법 여부로 치환하고 밀어붙인 일은 아물기 어려운 상처로 남았다. ‘조국 사태’로 명명된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은 대통령이 위기를 자초하고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한번 내린 판단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문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주식거래 때 손실을 각오하고 추가 손실을 막는 손절매의 지혜가 정치에서도 유효하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

                                                                        


 ‘조국 사태’ 본질은 애초부터 법의 문제가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도덕과 위선의 문제였다. 조국 본인이 부도덕자들에게 날카로운 도덕 채찍을 휘두르며 진보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업보다. 문 대통령도 이를 몰랐을 리 없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역대 대통령들이 고위 공직자 임명 때 단 한 번도 적용하지 않았던 위법행위 카드를 들고 나왔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 결정을 변경할 수 없다” 조국 지명자를 최종 임명하지 않을 경우 핵심 지지층 이탈 손실이 철회 때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요인이 작용했다는 설이 돌긴 했다.


 조국 전 장관 사임 이후 출구 전략에서도 대통령은 열혈 지지층에 함몰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는 여전히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있다.


 조국 사임과 부인 정경심 씨의 구속 이후 상당수 지지 세력이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정당하냐고 반발하는 듯한 모습이 더 큰 후유증을 낳지 않을까 싶다. 우상 같은 인물의 추락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보다 개혁저항세력의 음모에 따른 희생양으로 규정지으려는 듯하다. 지지 세력의 안타까운 모순으로만 수용하기엔 부작용이 심각하다.

                                                                


 거리의 광장과 디지털 공간에서는 여전히 ‘내가 조국이다’ ‘우리가 조국이다’ 같은 갈라파고스적 사고가 공고하다. “조국 가족은 검찰개혁을 이루기 위한 불의의 피해자다” 조국 딸의 대학·의학전문대학원 입시 부정의혹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입시 시스템의 문제로 윤색하려는 바람에 무리한 출구전략이 등장했다. 지지층의 입시전문가들이 “조국 딸의 입학 과정은 문서 조작이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라거나 “이명박·박근혜가 만든 입시제도와 사회 시스템의 희생양” 같은 물타기 주장이 나왔다. 오죽했으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내로남불’의 자세로 공세를 방어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겠는가.


 ‘조국 사태’로 공정의 가치에 타격을 입자 다급한 나머지 바람직한 교육정책의 역행까지 돌출했다. 선거공약까지 뒤집는 정시 확대와 학생부종합전형(학종)비율 축소라는 급조 정책은 진보·보수를 넘어 모처럼 정착돼 가던 입시제도를 한편으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머지않아 임기반환점을 도는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 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비판적 진보진영’에게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비판적 진보진영은 확증 편향을 줄여주는 대안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