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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적과의 포옹’에 준 노벨평화상

 수십만 명의 목숨을 희생하며 싸운 적과 포옹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는 건 역사가 증언한다. 2019년 노벨평화상이 분리독립 세력과의 오랜 분쟁에 마침표를 찍은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에게 돌아간 것은 그만큼 값진 일이다. ‘에티오피아의 오바마’로 불릴 만큼 젊고 진취적인 그는 아프리카 55개국 지도자 가운데 최연소(43세) 정치인이다.


 흔히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 최빈국 그룹, 미개한 나라, 커피의 발상지 정도로 안다. 조금 더 나아가면 6·25 전쟁 당시 아프리카 유일의 지상군 파병국가,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로 인식된다.


 에티오피아는 인류의 발상지이자 긴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긍지가 대단하다. 최초의 인류로 여겨지는 ‘루시’가 에티오피아 아파르 계곡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루시 박물관’이라고 통칭되는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은 뿌리를 찾으려는 세계인들의 상징물이다. ‘에티오피아 왕조의 창시자는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자손 멜리크네다’라는 조항을 헌법에 명시할 만큼 민족적 자긍심도 엄청나다.

                                                                  


 그것보다 에티오피아가 고유 언어와 문자인 암하라어를 영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대륙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는 고유 문자가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암하라어 문자는 아프리카 유일의 토착 문자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인 12세기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암하라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문법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33개의 자음과 7개의 모음을 가진 표음문자다. 발음도 다른 언어보다 한국인이 따라 배우기 수월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고유의 음식 문화도 세계화하는 단계다. 미국과 유럽의 웬만한 도시에서는 에티오피아 전통음식점들이 인기를 끈다. 서울 이태원과 일본에도 에티오피아 전통음식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의 마지막 독립국가 에리트레아의 국경분쟁과 갈등은 20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티오피아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짧은 이탈리아 지배에서 벗어날 때 에리트레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1952년에는 아예 정식으로 병합해버렸다. 에리트레아 독립투쟁은 1961년부터 1991년까지 30년 동안 이어졌다. 양쪽을 합하면 10만 명 이상의 군인과 11만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집계가 나왔다.

                                                                            


 1991년 에티오피아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2년 만에 에리트레아가 평화적으로 독립하고, 두 나라 관계는 정상화됐다. 그렇지만 독립 당시 국경을 분명히 설정하지 않은 게 화근이 돼 갈등은 끊이질 않았다. 바다가 없어져 내륙국이 된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와 항만 사용료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전면전이 벌어져 수만 명이 죽고,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됐다.


 아비 총리는 취임 다섯 달 만인 지난해 9월 에리트레아의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평화협정에 전격 서명했다. 독립국 에리트레아가 호응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큰 나라 지도자인 아비 총리가 수십 년 유혈 분쟁을 평화와 공존의 주춧돌로 바꾼 주도적 노력은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 평화의 운명은 지도자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판가름난다는 교훈을 보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와 분쟁으로 보낸 세월은 오랫동안 이어진 전제·독재·권위주의 정권 시기와 일치한다. 아비 총리의 리더십은 먼저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닮았다는 평가가 많다. 이슬람교를 믿는 오로모족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암하라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비 총리의 출신 배경도 평화정착과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방한해 ‘당신은 평화를 만드는 정치지도자인가요?’라는 제목으로 국회의원 회관에서 특강한 미국 흑인 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가 떠오른다. 그는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은 평화와 번영에 대한 선견지명이 없고, 폭탄과 총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쓴다”고 일갈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