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현 상황에는 ‘사면초가’라는 표현이 그리 무리하지 않다. 내우외환이 겹치는 정도를 넘어 더 높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의 둔화는 7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낳았다. 위기에 처한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기업들이 선택을 강요받아 설상가상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세계 교역랑의 감소 추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마저 어른거린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0.4% 감소세로 돌아서 1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내려앉았다는 사실이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설비투자가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통계는 낙관적이지 않은 경제의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국내 시장은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소득주소성장 정책의 수정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올려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과 기업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로 성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 차질을 빚은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잘한다던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분야도 허공 속의 메아리 신세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는 1년 만에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새로운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모레로 1주년을 맞지만 북한 비핵화 협상의 발걸음에는 도돌이표가 찍혔다. 주변 4대 강국으로부터 외교적 따돌림을 당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집권 4년차처럼 말을 듣지 않고 복지부동이 심해졌다고 정권의 핵심실세가 실토할 정도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개혁 대상인 검찰의 수장도 반기를 들었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불가결하지만, 발목을 잡고 있는 보수 야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대치 정국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식물로 변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보수 야당의 경제위기론 공세는 한층 거세질 게 분명하다. 마치 국내외의 구조적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득주도성장 하나 때문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닥친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질 내년 총선이 점점 가까워 오면서 정부와 여당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국면은 녹록치 않다.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어가는 형세다.
여기서 떠올려야할 게 ‘우생마사(牛生馬死)’의 교훈이다. 헤엄을 잘 치기로는 소가 말을 당할 수 없다. 널따란 호수나 저수지에 소와 말을 동시에 몰아넣으면 웬만큼 먼 거리에서도 모두 헤엄쳐 나온다. 이때 말의 헤엄 속도는 소의 두 배에 가깝다. 하지만 홍수가 져 물살이 센 강물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는 살아서 나오지만, 말은 익사할 확률이 높다.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자기 실력만 믿고 강한 물살을 이겨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친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다 물살에 떠밀려 뒤로 밀려나기를 반복하다 끝내 지쳐서 익사하고 만다. 자기 헤엄 실력을 아는 소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아주 조금씩 강가로 나간다. 그러다 강가의 얕은 곳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면 뭍으로 걸어 나온다. 물살에 편승하는 소는 살고 헤엄을 잘 치는 말은 고집 때문에 죽는다는 ‘우생마사’ 이야기는 이렇게 생겨났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진정한 실력은 위기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면초가인 문재인 정부는 위기 타개를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같은 유혹은 말이 물살을 이기려는 기질과 같다. 경제문제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당분간 저성장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부문도 거센 흐름을 넘는 게 살길이라고 여기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보다 우선 생명을 건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국가균형발전을 명목으로 내건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을 남발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낭비와 자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에 들인 돈보다 많다는 쓴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수십조 원의 예산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 투자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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