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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자원의 저주, 풍요의 역설

 최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독립할 때 국토 대부분이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당시만 해도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였다. 노르웨이 국가(國歌)에도 이를 상징하는 가사가 담겼다.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 땅을. 바위가 많고 파도 속에 깎여 나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집이 되는 이곳을~’. 전 국토의 5%만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이어서 1905년 독립 직후엔 임업과 어업이 중심이었다.

 

  지금이야 정보통신기술(IT), 종이, 가구, 실리콘 합금, 기술제품들이 주요 산업인데다 산유국을 자랑하게 됐지만, 지도자와 온 국민의 각고면려(刻苦勉勵)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마침내 여러 면에서 스웨덴을 역전하기에 이르렀다.


 싱가포르는 노르웨이보다 훨씬 열악했다. 싱가포르가 종주국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때 받은 땅은 마실 물조차 부족한 열대우림의 늪지대 섬에 불과했다. 그들은 좁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종적 차이를 극복하고 각별한 정체성과 가치관을 더해 금융과 국제 교통의 허브 국가로 우뚝 섰다. 이제 말레이시아는 물론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보다 더 잘살게 됐다.

                                                                   


 두 나라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나와 세계’라는 책에서 밝힌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기준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기준은 네 가지다. 첫째, 열대 지방은 못 살고 온대지방은 잘 산다. 둘째,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가 잘 산다. 셋째, 좋은 제도가 있는 나라가 잘 산다. 마지막은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가 잘산다. 열대 지방인 싱가포르와 한대 지방인 노르웨이는 첫째 기준에서만 사실상 예외 국가였다.


  반면에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풍요로운 석유 자원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외려 ‘자원의 저주’가 된 대표적인 국가다. ‘자원의 저주’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적은 국가보다 경제성장, 민주주의 같은 사회발전 수준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빗대 랭커스터대 리처드 오티 교수가 처음 붙인 용어다. 지도자와 사회지도층이 정치·경제적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풍부한 자원을 산업과 인적 자원 등에 효율적으로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망해버린 경제 때문에 ‘한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기이한 사태를 맞았을 정도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급진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서다.

                                                                          


 세계 10위 석유매장량 국가 나이지리아도 경제 난국에다 치안마저 불안해 무장괴한들이 고속도로에서 활개를 친다. 종교, 부족 갈등으로 산유지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랜 내전 탓에 차라리 석유가 없었더라면 좋겠다는 한탄이 나온다고 한다.


 한국은 다이아몬드 교수가 잘 사는 나라의 기준으로 제시한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국가다. 무엇보다 자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라 가운데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은 최선진국 수준이나 다름없다. 한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IT, 반도체, 자동차, 철강·화학 소재는 공급과잉을 걱정할 만큼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여기서 ‘풍요의 역설’이 출현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일자리는 사라진다. 기술 진보,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지만 일자리는 빠르게 줄어든다. 10~20년 내에 AI나 로봇으로 대체돼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 순위별로 나온 연구결과도 많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년 실업의 냉혹한 현실이 담긴 정규직 게임이 유행하는 걸 보면 안쓰럽게 느껴진다. ‘내 꿈은 정규직’이라는 제목의 인기 게임이 그것이다. 이는 사회현상을 투사한 거울인 셈이다.


 ‘풍요의 역설’은 거부한다고 쉽게 제어되지 않는 것이어서 더 큰 문제다. 우리에게 복지국가 개념과 사고방식을 재고하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노르웨이 청소년들은 축복받은 경제적 풍요와 자연환경을 두고 숲과 순록 똥밖에 없는 심심한 나라라고 투덜거린다고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