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명장(名將)들의 선수 시절 이력서를 보면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유난히 많다. 축구 역사상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박지성을 키운 퍼거슨은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정상만 13번, 영국 프로축구팀 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을 비롯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 퍼거슨은 감독 퍼거슨에 비해 보잘것없다. 스코틀랜드의 수준 낮은 퀸스파크팀에서 데뷔한 그는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밀려났다. 끊임없는 공부와 특유의 지도력으로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오른 그는 파리목숨 같다는 감독으로 맨유에서만 무려 27년 간 명성을 이어가다 72세에 용퇴했다. 한국을 사상 최초로 월드컵축구대회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도 스타선수 출신이 아니다.


 한국의 퍼거슨 같다고 ‘학범슨’이란 별명을 얻은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선수시절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무명이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이기고 축구 우승을 일궈내자 비로소 인정받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김학범은 “태극 마크조차 달아보지 못한 사람이 대표팀 감독이냐”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그의 선수 경력을 보면 선입견을 가질만도 하다. 명지대 졸업 후 국민은행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게 전부다. 서른두 살에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일하다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듬해 지도자로 변신했다. 43세 때 성남 일화 감독을 맡아 팀을 K리그 정상에 올렸다. 그의 힘은 부단한 공부에서 나왔다. 그는 틈만 나면 유럽과 남미로 날아가 선진축구를 공부했다.


 U-20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사상 처음 준우승이라는 전과를 올린 정정용 감독은 감학범 못지않다. 이번 대회가 있기 전까지 웬만한 축구팬은 그의 이름조차 몰랐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제갈용’(삼국지 제갈량과 정정용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무명의 우려를 떨쳐내고 누구도 이루지 못한 큰일을 해냈다. 경일대를 졸업하고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에 창단멤버로 참여했으나 부상으로 28살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최고 경력이 2부 리그였던 대구 FC 수석코치였다. 대학원에서 스포츠 생리학을 공부하고 지도자 수업을 통해 ‘선수 조련사’로 거듭 났다. 학구파 ‘제갈용’의 마법 노트가 한국 축구 역사를 바꿨다고 할 만큼 치밀한 지략가가 됐다. 경기마다 상대에 맞춰 변화하는 용병술과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작전으로 ‘팔색조 전술’을 펼쳤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에 맞는 따뜻한 지도방식과 소통의 승리였다.

                                                                  


 정정용 감독을 비롯한 무명 선수의 명장 변신이 던지는 메시지는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조직에 맞춤한 리더십의 중요성이다. 주목받지 못한 선수생활을 거친 감독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반면에 스타 선수였던 감독은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나 평범한 선수들의 상황이나 심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진단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부의 요직 인사에서도 어렵잖게 눈에 띈다. 이름값과 이미지만 믿고 임명한 요인 가운데 무능의 상징으로 드러난 사례는 숱하다.

 

  명문 대학의 지명도 높은 교수라는 이유로 장관이 됐지만, 업무평가 최하위 수준임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참신함으로 포장된 장관이 얼굴 노릇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개 조직관리 능력과 경험이 전무함에도 각종 인연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언론 프로필에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로 등장하는 인물이 실망감만 잔뜩 남긴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출직에도 그 같은 무능 모델은 허다하다. 우리는 깜냥도 되지 않는 인물이 이미지 관리 하나로 지도자가 됐다가 나라까지 망친 사례를 경험했다. 어떤 지도자든 능한 스포츠 감독처럼 조직 관리의 연금술사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조직이 수긍하는 수준의 능력은 갖춰야 한다. 이미지와 현실의 이중성을 꿰뚫어본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 갈파한 바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지 만들기와 상품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