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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지성의 비관·의지의 낙관’

 이탈리아 혁명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투쟁 정신인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 지금이야말로 절실해 보인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여전히 접점이 잘 보이지 않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절망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맞서 감옥에서 싸운 그람시는 동생 카를로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내가 비축해놓은 의지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 있단다. ”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은 그람시 석방운동에 앞장선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롤랑은 ‘안토니오 그람시: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내면서 이 말을 썼다. 그람시가 애용하게 된 이 말은 세월이 흘러 쿠바 혁명의 아이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도 즐겨 쓰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스라엘과 투쟁하는 조국을 향해 주문(呪文)처럼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간단없이 들려오는 소식은 대부분 희망적이지 않거나 혼란스럽다. 먼저 판을 깨면 위험부담이 커 북한과 미국 모두 파국을 원하지는 않는 듯하나, 북미 양측 고위 관계자들 언설은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각오가 다부지다.

 

 지난 주말 북측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철수해 조짐이 좋지 않다. 이보다 하루 앞서 미국 재무부가 유엔의 대북 제재를 피해 북한을 도운 중국 해운회사 두 곳에 대한 제재를 전격 단행해 긴장감이 높아졌다. 미국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 독자 제재를 한 것은 올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추가제재에 대한 철회를 전격 지시해 악화를 막은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징조의 하나다.

 

 미국과 한국의 분위기도 비관론이 더 짙다. 한국 고위인사가 워싱턴에 들러 체감한 미국 내 대북협상 분위기는 한결같이 회의적이라고 한다. 비관주의자·냉소주의자·회의주의자를 합치면 80%에 이르고, 낙관과 모르겠다는 각각 10%에 불과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 국민의 64%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여론 조사결과도 밝은 소식이 아니다.

                                                                      

 북한이 북미협상에 대한 불만을 남북관계와 연계하는 모습을 또 다시 보여준 것도 실망스럽다. 과거와 조금은 달라진 언행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마당에 구습을 재현하면 앞으로 어떤 합의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 비핵화 협상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라는 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났다. 이 변수에 관해 북한이나 한국에서 유념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지성의 비관주의’를 간과한 결과는 참담하다.

 

 한국 정부도 희망사항에 치우쳐 지나치게 앞서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추상적 지혜이지만, 결국 냉철한 분석과 차분한 행동만이 해답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는 미묘한 변수에도 돌발적인 장애물이 나타나곤 했던 역사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제 북미 양측이 모두 솔직하게 카드를 내보인 단계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미 간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어 일괄타결이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이 비핵화 해법으로 ‘일괄타결’을 거듭 강조하면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 접점 찾기가 매우 까다로워서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책도 내놓지 않고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무작정 제재만이 능사라며 손놓고 있는 건 ‘전략적 인내’로 포장했던 과거 미국 행정부와 다를 바 없다.

 

 비관적인 상황을 지성을 통해 치밀하게 분석하되, 낙관적인 의지를 끝까지 꺾어서는 안된다. 한반도보다 더 절망적일 수 있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람시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전에 역설했듯이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