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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민주주의 위협하는 극우세력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강국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더구나 식민지 시대를 겪은 나라로서는 대한민국이 독보적이고 경이적이라고 자평한다. 국제사회도 인정한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나라 대열에 일곱 번째로 진입했다. 2018년 총수출액도 6000억 달러로 세계 5위다. 국내총생산(GDP)은 12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67나라 가운데 21위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발표한 ‘2018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미국(25위), 일본(22위)보다 앞선다.


 부끄럽지 않을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짙어졌다. 30년 넘게 곡절을 겪으면서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극우 강경파의 득세 때문이다.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으려던 자유한국당이 새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는 제1 보수야당이 외려 친박 수렁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부터 자기모순에 휘말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탄핵을 사실상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언행이다. 이는 명백한 자기 부정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자격으로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헌재의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국가이다. 우리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새삼스레 제기한 탄핵의 절차적 하자도 국회의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라는 헌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극우 세력인 ‘태극기부대’를 껴안기 위해 민주주의 부정을 서슴지 않는 행위다. 최고지도자의 국정농단을 처단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린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에 동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살았던 그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를 보인 것도 민주주의 손괴다.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였다.


 5·18민주화운동 모독 발언은 한층 심각한 민주주의 위협 행위다. 5·18민주화운동은 법적으로는 물론 역사적, 정치적 평가까지 결론이 난 사안이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0년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에 따라 피해자 보상이 시작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 가해자를 단죄했다. 극우 논객의 끈질긴 ‘광주 북한군 투입’ 주장도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짙다. 24일 전국 시도지사들이 발표한 성명이 밝혔듯이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가장 빛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당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한 30대 청년의 극우 언행이다. 새싹까지 타락해서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지금까지 어떤 보수정당에서도 이런 극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이익에 눈이 멀어 반민주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선진국들이 모인 유럽에서 겪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도 극우 포퓰리즘의 기승 탓이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명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마음의 습관’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고 경고했다. 품격과 절제가 미덕인 보수 정당이 퇴행 길로 접어든 것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국당 내부 인사의 한숨 섞인 토로처럼 끊임없는 보수 혁신과 개혁을 통한 외연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퇴행적 급진 우경화 현상은 보수 결집은커녕 보수 환멸을 조장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민주주의 기반이 튼튼한 사회에서는 극우세력이 일부에 지나지 않으면 그리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렇지만 제1 보수야당이 지난날 찾아볼 수 없었던 극우로 기우는 것은 지금까지 이룩한 민주주의를 위협할만하다. 합리적 보수가 극우와 결별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보수주의는 중도·실용·현실주의에 입각했을 땐 융성했지만 보복주의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변방으로 밀려나고 만다’고 갈파한 뉴욕 타임스 서평편집자 샘 태넌하우스의 경구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