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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상습 오염 정치 언어의 정화

  영국 출신 유럽의회 의원이 2010년 3월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유럽연합(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막말을 퍼부었다가 3000유로(약4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벌금 액수는 의정활동비 열흘치였다. 의회 정치의 선진국인 영국의 국회의원 막말금지 규정은 오래 전부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나지르 아프매드 노동당 소속 상원의원은 2012년 파키스탄 테러범에 대해 1000만달러 현상금을 내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오바마에게 1000만 파운드 현상금을 걸겠다”고 말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야당 의원에게 영국 정치사상 가장 모욕적인 발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수위로 반격해 화제가 된 걸 한국인들이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다. “존경하는 의원님께서 내가 낸 세금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으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한국 정치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너무나 평범한 공격임에도 영국에서는 대표적인 ‘정치모욕’ 사례로 회자된다.

                                                                                 

     
 최근엔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던 도중 ‘멍청한 여자’라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 입모양만으로 ‘막말 논란’이 일었다. 영국 의회는 ‘거짓말쟁이’ ‘위선자’ ‘비겁자’ ‘반역자’ ‘악한’ ‘깡패’ ‘한 입으로 두말하기’와 같은 인격모독성 표현을 금지했다. 돼지, 개, 당나귀 등 짐승의 명칭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발언 수위에 따라 주의, 발언 중지, 퇴장 명령, 직무 정지까지 가능하다.


 프랑스와 독일도 흡사하다. 프랑스는 막말하는 국회의원에게 발언 금지, 회의록에 기록되는 주의, 자격정지를 포함한 견책이 뒤따른다. 독일에서도 퇴장명령, 30일간 출석 정지 같은 엄벌을 각오해야 한다.


 유럽에 비하면 덜 엄격한 미국도 의회의원이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면 곧바로 사과하게 하고 주의, 견책을 준다. “대통령은 위선적이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는 비겁하다”는 정도의 발언도 미국 의회의 금기어다. 조 윌슨 공화당 하원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 거짓말이야”하고 고함을 질렀다가 곧바로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때였다. 비난이 쏟아지자 윌슨 의원은 자신의 논평이 부적절했고 대통령에게 예의를 잃었던 점을 겸허하게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 하원은 ‘부적절한 언어사용 행위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조 윌슨 의원 사건을 계기로 미 의회 안에서 국가원수 모독 발언 금지 가이드라인이 추가됐다. 이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 못지않게 문제발언으로 말미암아 여야가 충돌하거나 대치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 막말 논란 때문에 올 처음으로 어렵사리 열린 국회가 또다시 공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외신보도를 인용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품위를 넘어선 정치언어다. 더불어민주당이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를 적용해 한국당을 공격하는 것도 과잉대응이긴 하지만, 이젠 여야 정권교체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막말 공격으로 국회가 공전하는 일이 벌어지는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됐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생경한 단어인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로 표현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스스로 원내대변인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악몽이 여야만 바뀌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경제를 죽인 노가리” “등신외교” 등으로 희화화한 일,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드르륵 꿰매는 게 필요하다”고 한 발언같은 막말 전력의 역사가 거울이다.


 막말 발언이 나올 때마다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해 징계를 논의하나 지금의 징계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 민간 전문가로 윤리특위를 구성해 막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활동 실적이 아닌 막말로 유권자에게 환심을 사는 구태는 처분할 때가 지났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