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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고위 공직자들의 치명적 윤리의식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을 온 가난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강의실 청소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부잣집 남학생이 이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두 학생은 윤리학 과목을 두 번씩이나 함께 수강했다. 그 남학생은 공부도 잘해 늘 A+를 받았다. 여학생은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자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공부만으로 개인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선(善)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학자인 댈러스 윌라드의 명저 ‘하나님의 모략’ 서문에 나오는 일화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실제 삶이 아니라 관념으로만 머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적실한 사례다.


 윤리 위반이 공직자일 경우 파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목포 문화재거리 차명 투기의혹에 휩싸인 손혜원 의원과 재판 민원 의혹을 받고 있는 서영교 의원은 불법·위법 여부와 상관없이 공직자 윤리 위반 혐의가 치명적인 수준이다. 손 의원은 복합적인 면에서 공직자 윤리 위반 혐의가 짙다. 우선 목포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공직자 윤리법의 백지신탁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가 대표를 지낸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의 주식을 백지신탁해서 이해충돌의 여지를 없앤 듯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을 통해 이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가족·인척·지인의 이득과 국회의원의 공적 권한이 연결돼 있어서다. 공직자윤리법 2조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애초 큰 논란거리였던 부동산 투기 여부는 외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역사공간 인근 부동산을 팔아 시세 차익을 실현하지 않았으며, 국비나 지방비를 지원받지도 않았으니 이해충돌이 아니라는 게 손 의원 논리다. 앞으로 이를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어서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어 선의(善意)라고 주장하지만 공인으로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동료였던 금태섭 의원이 “손 의원의 공직자 윤리는 다른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시종일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다. 손 의원은 국가보훈처장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불러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논의해 결국 유공자로 선정되도록 한 의혹도 받는다. 이 역시 사실상 이해충돌방지 위반 성격이 농후하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 재판 민원 의혹이 비난받는 이유는 국회 파견 판사에게 강제추행 미수 혐의로 기소된 지인의 아들에 대해 선처를 요구한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심각성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크다. 손혜원, 서영교 의원의 윤리와 부도덕 논란은 본인들은 물론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인사청문회 논란 끝에 지난달 28일 취임한 김상환 대법관의 윤리의식은 진보가 무엇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그는 과거 불법 위장 전입을 세 차례나 했다. 그런 그가 위장 전입을 한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은 그래도 괜찮고 자신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은 유죄라는 이중 잣대다. 그럼에도 자기반성은 없었다. 진보성향인 그는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흡사한 문제점을 지녔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이 이번 정부에서도 여럿 있었으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반성하는 말이라도 했다. 김상환 대법관과 똑같은 위장 전입으로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이은애 헌법재판관은 취임사에서 “저의 부족함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 대법관 역시 취임사에서 “저의 경력들이 편향성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와 다른 견해도 경청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공직자에게 일반 시민이나 다른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더 높은 윤리 규범이 뒤따르는 것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봉사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인사 가운데 용납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윤리위반 사례를 지닌 인물들이 보수 정권 때 못지않게 많은 것은 촛불 시민을 서글프게 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의 명령을 어기는 반역이나 다름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보통 시민보다 못한 공직자 윤리의식은 사회진보의 걸림돌 같은 존재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