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이 즐겨 쓰던 ‘투명인간’이란 말은 공상과학소설에서 유래했다. 현대 공상과학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97년 ‘투명인간’이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의 인간을 뜻한다.


 투명인간이 되려면 신체의 굴절률이 공기의 굴절률과 같아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 그리핀 박사는 굴절률을 같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투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겨울에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필요에 따라 존재를 드러내려면 옷을 입거나 붕대로 몸을 감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핀 박사는 연구에 몰두해 투명인간이 되었으나, 보통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과학적으로 따져 봐도 투명인간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우선 투명 인간은 보지 못한다. 끼니를 잇는 것도 쉽지 않다. 투명한 모습으로 외출하려면 먼저 위장이 깨끗이 비었는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회찬 전 의원의 ‘투명인간’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때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처음 소환됐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이 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이 분들은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6411번 버스는 이제 투명인간들의 상징이 됐다.


 그런 노 전 의원이 지난 10일 70주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으며 다시 한 번 호명됐다. 동지였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일평생 우리 사회 ‘투명인간’ 시민들과 삶을 함께 했다”고 그를 기렸다.


 바로 다음날인 11일 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죽어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스물네 살의 이 청년은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숨졌다. 더욱 안타까운 건 발견될 때까지 여러 시간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최근 3년간 4명이 사고로 숨졌는데도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하청, 협력업체 노동자의 사망 사고였기 때문이다. 원청회사인 발전소가 재해 방지에 노력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여 원을 감면받았다는 역설적인 얘기를 듣고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2012~2016년 발전소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은 346건의 사고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 몫이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악명 높은 ‘죽음의 외주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안 해도 괜찮으니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절박하게 호소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더 이상 사회적 약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정치권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말뿐이었다. 2년 전 구의 전철역 스크린도어에서 19살 청년이 전동차에 치어 숨진 직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위험 외주화 방지 7법’ 같은 법안을 내놓았으나 기업활동 위축을 이유로 끝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지난달 9일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 피해자들도 ‘더 이상 투명인간 취급받지 말자’고 나섰다고 한다. 거주자 대부분이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여서 서로 친분도 없을뿐더러 대책기구도 따로 없어서다. 이곳 화재 사망자 7명 가운데 4명은 빈소도 없이 세상과 하직한 투명인간이다. 장애인, 저임금 노동자, 서민, 노인, 여성들의 상당수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투명인간들의 힘으로 굴러간다.


 정치인들은 심지어 잠잘 때도 사회적 약자를 생각한다고 떠벌인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한때 누리집(홈페이지)에 ‘사회적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진정성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썼지만, 막상 지역구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해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최저임금 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리면 나라가 망한다더니 본인들 연봉(세비)은 2년 연속 소리도 없이 올렸느냐는 타박을 들은 게 우리네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사무처가 업무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비워달라고 하자 노 전 의원은 “만약 일이 잘 안 되면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했을 정도다. 투명인간들의 꿈은 노회찬 같은 정치인을 또 만나는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