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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영원히 패권 추구 않는다”는 중국

 개혁·개방 40돌을 맞은 중국의 다짐 가운데 영구적 패권 포기 선언은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대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기념식에서 “어떤 수준으로 발전하더라도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쯤은 국제정치의 상식적 판단으로도 가능하다.

 

  시 주석은 “자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거나,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거나, 강자라며 약자를 깔보는 것을 반대한다”고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의 패권주의 배격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번엔 ‘영원히’를 추가해 강도를 높인 게 눈길을 끈다. 시 주석은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는 DNA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지금이야 패권 추구 포기를 언급하기에 이르렀지만, ‘패권’이란 말은 중국이 옛 소련과 미국의 세계 지배와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1968년 8월 중국 신화사 통신이 옛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비난하면서 ‘패권주의’라고 꼬집었다.

                                                               

        

  덩샤오핑은 1974년 유엔 연설에서 “중국은 결코 패권을 부르짖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 다른 나라를 탄압하거나 착취한다면 전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을 ‘사회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5년 1월 제정된 중국의 신헌법에도 ‘초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이후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패권주의 반대노선을 직접 언급해 왔지만, 세계 2대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의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직접 체감하는 이웃 나라들은 중국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중국이 인접 국가들을 힘으로 위협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베트남,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들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의 패권주의적 압박에 끊임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를 견강부회 식으로 부인한다. 개혁·개방 40주년에 때맞춘 중국 관영언론의 논평은 시 주석의 패권주의 포기를 의아하게 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난사군도에서 군사력 확장은 국제법에 부합하며 방어 무기 배치는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주변국을 최대한 배려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했을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은 미국이 아닌 한국을 겨냥했다. 중국은 롯데 제품을 비롯한 한국 상품 불매 운동,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막상 미국에는 아무런 보복조치도 하지 않았다. 최근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자 중국은 자국에서 활동 중이던 캐나다인 2명을 구금하고, 캐나다 구스 점퍼 불매운동으로 보복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가 없는 것은 사드 배치 때와 같다. 패권주의를 비판해온 중국이 스스로 패권국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다.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지우기에서도 중국의 패권주의는 이미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인식도 표출했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려 해양경찰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도 중국은 폭력적인 법 집행이라며 외려 한국을 비난하는 사례도 흔하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진핑은 다른 나라 특사들과 면담할 때는 그들을 옆자리에 앉히면서도 유독 한국 특사들은 홍콩 행정청장이 앉는 낮은 자리에 앉히는 무례를 의도적으로 과시한다. 조공관계 시절의 동아시아 패권주의가 잠재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에 치욕스러울 정도로 비이성적인 힘자랑을 한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다. 


 서남공정, 서북공정도 동북공정과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이 ‘중국몽(中國夢)’ 선언과 더불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육상 해상 실크로드)’ 건설 과정에서도 패권주의 냄새가 곧잘 풍겨 나온다.  


 중국이 나라 간의 문제를 낡은 시대처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나라라는 인식은 국제사회에 깊이 뿌리 박혔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질서를 깨고, 스스로 패권국가가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영구 패권 포기를 선언할 게 아니라 이웃 나라들에게 먼저 약속해야 한다. 선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언행일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컬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