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행위는 당초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불똥이 튀기 일쑤다. 모든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과 동기, 폭력 사용과 위협, 심리적 충격과 공포심 유발, 소기의 목표나 요구 관철 같은 4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무모한 극단주의자의 테러도 미국에 대한 충격보다 외려 부머랭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올 개연성이 더 크다.
“전쟁 훈련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이 못 만나지 않느냐. 키리졸브 훈련에 반대한다.” 미국 대사에게 겁만 주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는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테러의 파문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우려로 퍼져 나갔다.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동맹국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 대사 테러가 있었다.” “어떻게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괴한이 대사의 얼굴에 칼로 공격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인들과 친해지려 했고 아들 이름까지 한국식으로 지었던 대사가 공격을 받았다.”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언론의 반응은 무엇보다 친한(親韓) 행보를 보인 리퍼트 대사에게 테러를 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방송들은 피를 흘리며 걸어가는 리퍼트 대사의 모습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관저에서 집무실까지 걸어서 출근하며 마주치는 한국인들과 가까워지려 애써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말이다.
경호를 요청하지 않은 미국 대사였지만, 최소한 외교관에게는 안전한 나라로 인식돼 왔던 한국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깨진 것은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에 큰 손실’이라는 외국 언론의 전반적인 평가는 대응책 마련에 충분히 반영해야 마땅하다.
한·미 두 나라가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양국 모두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파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은 높이 사줄만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신속하게 파문을 수습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한미 동맹을 강조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미 국무부가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한국 정부에 어떤 책임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은 지혜로운 자세다. ‘테러’라는 용어가 아닌 ‘공격’ ‘폭력’이라는 표현을 써 우발적 사건으로 규정한 것도 일단 바람직해 보인다.
테러를 당한 리퍼트 대사의 의연한 트위터 반응은 그가 평소 보여준 한국 사랑만큼이나 값지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리퍼트 대사는 “잘 있으며, 상태가 굉장히 좋다. (한국민들의) 지지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한·미동맹의 진전을 위해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다. 한국어로 덧붙인 “같이 갑시다!”라는 말처럼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 같은 돈독한 관계를 지켜나가면 금상첨화이겠다.
이번 사건이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동북아시아 과거사 관련 발언으로 두 나라 사이가 어색해진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촉각을 곤두서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도발적인 태도 변화로 동북아 정세가 미묘해진 시기와 맞물려 꺼림칙하다. 사건 직후 일본 언론의 반응에서는 은근히 셔먼 차관의 발언과 관련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호들갑이 엿보인다.
우리 정부로선 개인의 무모한 돌출적 소행으로 말미암아 외교적, 도의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게다. 그렇지만 앞으로 외교현안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축소되거나 자세가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도 이번 일을 밀미로 우리 정부에게 보이지 않은 압박감이라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대미외교에서 어부지리를 얻지 않을까 하는 한국의 우려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전쟁광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라고 부추기는 북한의 한미 이간과 남남갈등 전략에 우리 시회가 말려들어서도 곤란하다. 이 사건을 정치적, 이념적 공격무기로 삼는 것은 국익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벌써부터 새누리당과 일부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이를 이념논쟁이나 종북몰이로 악용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배후세력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지만 ‘공안몰이’로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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