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거꾸로 가는 언론·표현의 자유

 

 18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에선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무엇이든 범죄행위였다. 말이든 문서로든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됐다. 국왕의 권위를 하늘처럼 여기는 ‘보통법’(Common Law)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진실이 더 클수록 명예훼손도 그만큼 커진다’는 발상까지 담고 있었다. 진실할수록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여기에 도전한 이들은 ‘케이토’라는 필명으로 편지 형식의 연재 에세이를 쓴 정치철학자 존 트렌처드와 토머스 고든이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운영되려면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정부정책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 사상이다. 두 사람은 1720년 ‘진실이 명예훼손의 방어기제가 돼야 한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처음 전파했다. 영국이 서양에서 가장 먼저 언론·출판·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나라가 된 것도 이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들 덕분이다. 


 ‘케이토’의 견해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존 피터 젱거라는 인쇄업자가 1735년 뉴욕 총독을 비판한 죄로 재판을 받을 때 케이토의 생각이 변호의 근거로 쓰였다. 젱거의 변호사 앤드루 해밀턴은 “시민은 진실을 말하고 글로 쓰는 행위로 독단적인 권력을 폭로하고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배심원들은 젱거가 무죄라고 판단해 식민지 사법부를 놀라게 했다.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이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언론·출판·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의 뿌리도 같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박근혜정부 들어 후퇴하는 증거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가 며칠 전 발표한 ‘2015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2년 연속 낮아져 180개 국가 가운데 60위를 차지했다. 2014년 ‘프리덤하우스’가 공개한 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197개 조사국 중 68위에 머물렀다. 언론자유지수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에 올라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초 박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종편채널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상당수 국민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퇴보한 것을 꼬집었다. 외국 언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언론 상황의 퇴행을 비판한다. 미국의 저명한 20세기 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언론의 자유는 특혜가 아니라 위대한 사회를 구성하는 유기적인 필수품”이라고 역설했다. 


 지난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군사독재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언론협력관 직제를 새로 만들어 논란거리를 보탰다. 언론인 대면 접촉과 보도 협조 요청을 주된 임무로 하는 언론협력관의 업무 행태는 오해와 역작용을 불러올 개연성이 높다. 협조를 빙자한 적절하지 않은 로비나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잇단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자에 대한 명예훼손혐의 수사가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을 불러오면서 언론 자유 퇴보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양상이다.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 비판 전단이 집중적으로 뿌려지자 경찰이 죄명으로 명예훼손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 군사정권 시절에 버금가는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반발이 거세졌다. 대통령의 공약파기,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판결처럼 단순 사실을 정리한 전단까지 비방으로 모는 것은 과잉충성에 가깝다.


 국정 최고책임자를 사실에 근거해 비방 아닌 비판하는 것조차 명예훼손으로 모는 것은 중세 왕정국가와 독재국가에서나 행해지는 일이다. ‘진실이 클수록 명예훼손도 그만큼 커진다’는 영국 보통법 발상과 그리 다를 게 없다. 서울경찰청이 대통령 비판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은 과거회귀 선언처럼 들린다. 민주국가라면 국정 최고책임자와 정부는 명예훼손이 아닌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케이토의 편지’ 글에 담긴 정신이다. 그것이 싫다면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게 해법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