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도 인사청문회 통과하고 국무총리가 됐는데 나는 왜 안 되느냐.” 앞으로 국무총리는 물론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할 고위공직자 후보들 가운데 이렇게 하소연하면 국회의원들은 할 말이 없게 됐다.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 수위가 이완구 총리보다 조금이라도 낮으면 말이다. 대통령이 흠집투성이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수첩인사’로 밀어붙일 경우 대책이 없다.
천신만고 끝에 인준을 통과하고 취임해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완구 총리는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본받지 말아야할 대표적인 인물이다. ‘길어봤자 49일’이라는 일본속담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완구의 만신창이 전력(前歷)도 잊힐 게다. 그럼에도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이완구처럼 잔꾀로 출세하고 재산을 모아야 떵떵거리고 대접받는 건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서글픈 현실이다.
이완구는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지명된 총리 후보자 17명 가운데 중도 사퇴했거나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된 후보자 6명을 포함해도 도덕성과 정직성에서 가장 질이 나쁜 편에 속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의혹, 장남의 미국국적 취득 문제로, 장대환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의혹·자녀 위장 전입의혹 때문에 국회 인준에서 부결됐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정부 시절의 김태호 후보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연루와 청문회 거짓말 들통으로 중도 사퇴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용준 후보자가 재산과 자녀 병역의혹으로 자진 사퇴했다. 안대희 후보자는 과도한 변호사 수임료, 문창극 후보자는 과거 발언 하나로 물러나야 했다.
이에 비하면 이완구는 본인과 차남의 병역의혹, 부동산 투기, 국보위 삼청교육대 활동,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교수 채용 특혜, ‘황제 특강’, 경력 속이기, 2억대 연봉 차남의 소득세·건강보험료 탈루, 언론 협박 등 불법·탈법·편법 의혹과 부도덕 행위가 끝없이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거짓말이다. 병역과 부동산 투기 의혹, 언론 겁박 등 금세 들통 날 거짓말을 태연히 하고서도 무사했다. 리처드 닉슨이 거짓말 하나 때문에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했던 미국이라면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공직자가 국민을 속이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앞으로 신상털기식 청문회만 바꾸면 될 것처럼 제도 탓하기에 급급하다.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고 주장하지만, 인사청문회 선진국은 도덕성 검증이야말로 사전에 발가벗기듯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발상이다.
한국에서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명백한 흠결이 나와도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인사비서관 자리를 신설하고 인사혁신처를 만들어야할 까닭이 없다. 이완구 의혹만 해도 병적기록표와 재산형성 과정을 간단히 확인만 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사안이다.
청문회를 도입한 것은 도덕성과 정책 수행 능력을 검증해 국민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시절 도입을 요구하고, 더욱 강화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촉구하기보다 엉뚱한 제도 타령만 하고 있으니 공직인사가 개선될 리 없다.
한 번도 인준 과정에서 부결되지 않아 현역 국회의원에게만 관대한 인사청문회 문화도 반드시 바꿔야 한다. 제 식구에겐 늘 다른 잣대를 갖다 대면 어느 후보자와 국민이 수긍하겠는가. 흠결과 함량미달을 졸렬하게 지역감정 부추기기로 뛰어넘는 후진국 작태도 다시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인사 검증 기준이 인사청문회가 처음 도입될 당시보다 현저히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였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확연히 달라야 하듯이 인사검증과 인사청문회도 이완구 이후 표변(豹變)해야 한다. 새 각료후보자들의 청문회 때부터 그래야 맞다. 인사청문회 때문에 꼭 필요한 인사가 손사래를 친다는 ‘청문회 공포증’ 얘기도 그만 흘렸으면 좋겠다. 끼리끼리 문화를 고수하면서, 올바르게 살고 능력도 있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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