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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박근혜 대통령은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면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말을 했다는 기록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좋아하는 말에 속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직전 이명박 후보를 공격했을 때 외에는 이 낱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라는 뜻을 지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보수와 기득권층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열쇳말(키워드)이다. 그럼에도 박대통령은 물론 우리나라 보수진영은 이 말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마음속에 켕기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발탁하는 고위 인사들은 대부분 노블레스 오블리주 덕목과 거리가 멀다. 그런 인물들을 쓰면서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건 면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선지 보수진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껏해야 돈 있는 사람들이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쯤으로 받아들인다. 이 말의 탄생 과정과 본질이 병역과 납세 의무에 있음은 애써 외면한다. 기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기도 하지만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인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에 가깝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자료 사진>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선 인사청문회가 필요한 자리나 청와대에 가려는 인사라면 ‘4대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냉소적인 신조어가 시정市井)에서 춤을 춘다.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의혹,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이 4대 필수과목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 정도다. 어느새 여기에다 논문 표절이 필수과목에 보태져 ‘4+1’이 됐다. 불·편법증여, 과거 전력, 공금 남용, 이중국적 같은 건 필수성 선택과목으로 들어간다. 이런 지경이니 ‘부패한 귀족’을 지칭하는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여야 고위공직에 오를 수 있다는 반어법이 어색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런 현상이 한층 심각해졌다. 곧 인사청문회에 출석하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흠잡을 데 없기로는 드물게 보는, 준비된 총리라는 애초의 바람잡이성 홍보효과는 온데간데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동산투기, 본인·자녀 병역 의혹, 논문 표절 의혹, 국보위 삼청교육대 활동, ‘황제특강’, 경력 속이기, 2억대 연봉의 차남 건강보험 무임승차에 이르기까지 의혹이 자판기처럼 쏟아진다. 


 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어김없이 등장해 사전 인사 검증을 하긴 했는지 의아하다. 더 해명할 방법이 없어서인지 언론 협박발언이라는 끔찍한 소식까지 들려왔다. 군사독재시절의 총리 후보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분위기 쇄신 카드로 나온 이 후보자가 벌써 지나치게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인물이 국무총리가 된다면 국민의 신뢰는 물론 그의 리더십이 먹혀들리 없다. 공직사회 적폐 척결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여겨졌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5개월 16억 원이라는 과도한 수임료 때문에 자진사퇴한 것도 리더십 작동 불능 우려가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칼레의 시민동상>


 박 대통령은 청문회와 언론의 과도한 신상털기가 필요한 인재 등용의 걸림돌이라고 늘 불만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청문회가 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총리 인준을 압박하는 청와대의 행태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부실 인선에 대한 변명은 자신이 노무현 정부시절 인사청문회를 강화한 주인공임을 비춰보면 어이가 없다. 단 한번이지만,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 국가지도자를 포함한 지도층부터 깨끗하고 도덕성을 의심받아선 안 된다”고 일갈했던 것도 박 대통령이다.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인물이어야 득세하는 현실은 사회의 분노와 좌절감을 부추긴다. 대통령이 지도층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문하고 독려하기는커녕 파탄 난 직업윤리의 표본을 전시하는 듯한 태도는 서민의 가슴을 에는 일이다. 대통령 수첩에 부도덕한 인물만 넘쳐난다면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다는 방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블레스 말라드’가 활개 치는 나라에는 희망의 싹이 자라기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