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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공직사회의 여의봉 “현행법상 문제없다”

 

 국회의원이 지방의회의원 등으로부터 고액의 후원금을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여기에 동의한다. 국회의원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공직 후보자들로부터 많은 액수의 후원금을 받는 건 윤리와 대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한마디로 논란은 ‘끝’이다.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 5개월 만에 16억 원을 벌어들인 것도 ‘전관예우 금지법’을 교묘하게 피해간 결과다. 역시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말로 끝난다. ‘5개월 16억 수임료’는 전관예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이구동성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엔 여론도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2011년 정규섭 마산회원구청장이 임기 도중 사임 후 엿새 만에 ㈜부영주택 건설본부장으로 임명되자 지역 시민사회가 들끓었다. 공직자가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에 취업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만 행정안전부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자 모든 게 정리됐다. (주)부영은 취업 제한기업에 해당하지만 계열사인 (주)부영주택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행안부의 논거였다. 꼼수임이 분명한데도 대응수단이 없다. 정 씨는 재직 중에도 부영 직원인지 공무원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았을 정도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말은 때론 ‘여의봉’(如意棒)이나 다름없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의 최고 무기가 여의봉이다. 여의봉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만3500근(8톤)에 이르는 여의봉을 성냥개비 정도로 줄여 귓속에 넣어 다닐 수도 있다. 손오공은 이를 무기로 천궁, 용궁, 염부를 돌아다니며 온갖 분란을 일으킨다. 손오공은 여의봉의 위력에 옥황상제도 두 손을 들자, 기고만장해 부처님에게까지 대들었다가 오행산 바위에 500년 동안 깔려 있어야 했다.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여의봉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관피아’(관료 마피아) 논란이 진행 중인 가장 최근에도 등장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5월30일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공무원의 포스코 취업을 승인해준 사실이 지난주 뒤늦게 밝혀지자 도마에 올랐다. 안전행정부의 해명은 어김없이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것이었다. “해당 국장은 2009년부터 퇴직한 지난 4월 말까지 포스코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직책을 맡았다.”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결연한 다짐이 무색한 지경이 됐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해명은 시대 흐름과 국민 정서에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게 한결같은 여론이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의 공직자가 퇴임 후 2년 이내에 특정 사기업에 취업할 때 반드시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8부터 올 4월까지 재취업을 신청한 고위 공직자 1819명 가운데 취업에 제동이 걸린 사례는 7.4%인 134건에 그쳤다. 심사가 지나치게 온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의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재취업 심사는 국민의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무 관련성의 판단 기준을 강화하고 심사대상을 확대하는 법령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직자들에겐 여의봉이 있다. 법을 엄격하게 만들더라도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 훈령, 예규 같은 하위법령에 그물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교묘하게 꾸미면 그만이다. 또 다시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여의봉을 들이대면 만사형통이다. 난개발이나 편법 건축 인·허가 논란 때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여의봉이다. 공무원들의 반발논리는 대개 이렇다. “공무원은 법에 있는 대로 집행한다. ‘관피아’라지만 법에 없는 행위를 한 게 아닌데 일방적으로 무법자 마피아처럼 몰리는 건 억울하다.”


 공직사회의 여의봉은 아무리 봐도 신통방통하다. 관피아, 법피아(법조+마피아)의 재취업과 전관예우 척결의 관건은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여의봉에 달려 있다. 향후 대책에서 민간의 참여율을 높여 여의봉의 효용성을 줄이는 게 그나마 해볼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싶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