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에 격랑이 일고 있는 까닭은 지도자가 선거 결과를 잘못 읽은 탓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40%대 초반으로 급락한 것은 직접적으론 최근 인사실패의 귀결이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박 대통령이 6·4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흘린 눈물이 통했다고 여긴 것이다. 기존의 인사 철학을 바꾸지 않은 것도 이런 안이함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심정으로 ‘국가개조’를 다짐했다. 적폐 타파와 국정 혁신은 민심의 지지 없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개혁 추진을 위한 지지율의 심리적 방어선이 40%라고 본다. 그 방어선 붕괴가 눈앞에 다가왔다. 가장 최근인 지난 18일 여론조사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1.4%까지 떨어졌다.
이 숫자가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또 다른 여론조사결과, 박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보다 잘못하고 있다는 점수가 처음으로 더 높아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개혁추진 동력을 급격하게 잃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6.4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결과 연합뉴스 그래픽>
그렇지 않아도 올 들어 나라에는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흔히 ‘복무쌍지 화불단행’(福無雙至 禍不單行)이라고 한다. 복은 한꺼번에 둘씩 오지 않고, 불행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다는 걸 일컫는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 10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세월호 침몰사고로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나왔다. 세월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주말엔 30년 전 15명의 사망자를 낸 군부대에서 또 다시 끔찍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 병사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여권은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또다시 대형 총기사고가 터져 민심이반이 격화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안전행정부 수장이던 유정복 전 장관의 입방정 때문이라는 숙덕공론까지 있을까 싶다. 지난 2월1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유 장관은 “지난해 50년 만에 처음으로 사망자 10명이 넘는 사건·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대통령에게 자랑했다. 그 뒤 사흘 만에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가 터졌다.
대통령이 심상찮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선 먼저 지방선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닦아줄 때다. 박 대통령을 지켜 달라”며 읍소작전을 펴 참패를 면한 걸 절반의 성공으로 해석할 때부터 불행은 싹트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직후 국정개혁을 위한 첫 과제인 인사개편에서부터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면서 인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무총리는 물론, 장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에서 한결같이 측근과 극우보수 인물을 택해 변화를 의미하는 통합·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진보 교육감들에 맞서는 ‘공격 앞으로’의 행동대원으로 비칠 만큼 낡고 극우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합리적인 개혁이 아니라 진보진영에 정면대결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 눈에는 새 인사에서 아집이 느껴진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그대로 안고 가는 선택이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인사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그가 온존하는 한 ‘새 술은 새 부대에’가 될 수 없다. 김 실장이야말로 ‘낡고 왜곡된 역사관’의 대부 격이다.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기춘 없이 국정을 운영할 자신이 없는 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직후 한동안 40%대의 지지율이 계속된 것도 대부분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인사를 이렇게까지 잘 못할 줄 몰랐다는 사람들도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일찍이 수많은 정치인들이 민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선거 민심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정치의 반은 타이밍이고 나머지 반은 정서를 헤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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