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세상은 정치 지도자나 고관대작들이 아니라 평소엔 드러나지 않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만든다는 게 세월호 참사에서도 명징해졌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 게,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라고 말했던 아르바이트 승무원 박지영 씨. 결혼을 앞두고서도 자신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동갑내기 커플 김기웅·정현선 씨.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아들 학비 내라.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라고 했던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 더 많은 제자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남윤철·최혜정 교사를 비롯한 단원고 선생님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숨진 정차웅 군.
이 작은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군상(群像)은 염치와 책임을 바닷물에 던져버린 이들이다. 침몰하는 배와 승객들을 방치하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종교의 보호막에 숨어 탐욕을 좇은 선주 유병언. 공복(公僕)이기는커녕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무책임한 공직자들. ‘관피아’라는 신조어로 조롱받는 전직 관료들. 권력과 로비의 단맛에 취한 정치인들.
우리는 몰염치한 무리와 대척점에 선 작은 영웅들의 진정한 용기와 희생정신을 길이 기억해야 한다. 실종자를 모두 찾은 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4월16일을 ‘안전의 날’로 지정하자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망각이라는 ‘레테의 강’으로 빠져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비극의 작은 영웅들과 함께 이와 비슷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영원히 기리는 작업에 나서야 할 때다. 여기에는 의사상자(義死傷者)로 지정된 인물들을 우선적으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당시 후배들을 구하려다 희생된 부산외대 양성호 씨, 지난해 7월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때 친구를 구하려다 숨진 공주사대부고 이준형 군, 2012년 인천 페인트 원료 창고 화재 당시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 목숨을 잃은 오판석·박창섭 씨, 2001년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일본 유학생 이수현 씨 같은 작은 영웅이 그들이다. 이들 의사자야말로 무능한 정부와 말로만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들보다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참 영웅이다.
1971년부터 지정하기 시작한 의사상자(義死傷者)는 700명에 가깝다. 이밖에 콩나물 행상을 하며 평생 모은 수억 원대의 전 재산을 흔쾌히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들의 갸륵한 마음, 불을 끄다 청춘을 사회에 바친 소방관들의 거룩한 사연, 강도를 잡아주다 흉기에 찔려 다치거나 숨진 이들의 의협심에 이르기까지 숱한 미담들은 한때의 일로 치부하기엔 소중하기 그지없다.
언론의 1회성 보도로 끝낼 게 아니라 ‘작은 영웅들의 전당’에 한데 모아 영구히 전시하거나 자료로 남겨 후대에까지 널리 전승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작지만 뭉클한 의행(義行)은 알려지지 않은 게 훨씬 많다.
‘작은 영웅들의 전당’에 전시할 영웅담은 언론의 기사를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거나 발굴한 것도 대상에 포함하면 좋을 게다. 통시적(通時的)으로 한다면 사료(史料)에 나타나는 기록들을 추가로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작은 영웅들의 전당’이 도서관 기능을 겸하는 형태라면 금상첨화다. 작은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품 같은 걸 만들어 곁들이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감동적인 인터넷 홈페이지도 함께 만들면 사이버 ‘작은 영웅들의 전당’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작은 영웅들의 전당’은 생생한 교육장이 될 수 있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견학하면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고매한 정신의 체험장소가 될 게 틀림없다. 구체적 계획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세울 수 있겠다. 민간 차원에서 추진한다면 모금운동을 펼쳐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싶다. 작은 정성이 모이면 뜻은 훨씬 커진다. 언론단체나 사회단체가 캠페인에 나서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듯하다. 이렇게 세우는 ‘작은 영웅들의 전당’이야말로 진정한 ‘명예의 전당’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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