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차알디니는 사람들이 승패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은 대학생들이었다. 그는 미식축구 경기를 보고 나온 학생들에게 경기 결과를 설명해 보라고 주문했다.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자기 대학이 승리했던 경기에 대해, 나머지 절반에게는 패배한 경기에 관해 설명하도록 했다. 이긴 경기를 설명하는 학생들은 “우리가 이겼어요!”라는 등의 표현으로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이와는 달리 진 경기를 얘기하는 학생들은 “그들(선수들)이 졌습니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차알디니는 사람들이 승자와는 자신을 연결시키려 하고 패자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사람들은 ‘패배’를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자기 잘못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주식투자자들이 주가하락으로 손실을 본 뒤 추가 손실이 예상되지만 손절매를 못하는 까닭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심리 때문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화부장관 후보자,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자>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치는 용기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점도 실정(失政)을 거듭해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데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취임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인사 잘못이라고 다수 국민이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는 인사청문회 제도 탓으로 원인을 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인사를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복(公僕)들에게 ‘개과불린’(改過不吝)을 역설한다. 자기 잘못과 허물을 고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의미다. ‘개과불린’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바를 담은 사자성어’에도 비중 있게 포함된 말이기도 하다.


   ‘개과불린’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려 90여 차례나 등장한다. 중종 때 홍문관 직제학 이세인은 이런 상소를 올렸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간(諫)함을 따르고 어기지 말며, 허물 고치기를 인색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탕 임금은 대성(大聖)이어서 과실을 말할 만한 것이 없었을 텐데도, 간하면 따르고 허물이 있으면 고쳤습니다.” 폭군 연산군조차 “상소 가운데 조목별로 열거한 것은 대개는 내가 알고 있는데, 다만 과실을 고치되 인색하지 않다는 말은 알기는 쉬우나 실행하기가 어렵다. 이는 내가 부덕하여 능히 실행하지 못하는 탓이다”고 자책한다.

                                                                                                   


  개인이나 조직은 일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과오를 범하곤 한다. 중요한 건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2기 내각 구성에서 문제인물들이 숱하지만 정치적 타격만 염려해 대부분 임명을 밀어붙일 태세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심각한 부적격사항을 드러낸 김명수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등이 한꺼번에 낙마하면 정국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문제가 많은 김 후보자만 낙마대상이라는 설이 떠돈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교통경찰에게 신호위반으로 걸렸을 경우를 상정해 봐도 답은 바로 나온다. 위반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변명하고 따지는 사람과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사과하고 불가피한 형편을 들어 용서를 구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선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가.


  야당 공세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낡은 정치 공식에만 기대는 건 최하의 방책이다. 국민은 업무 능력과 자질, 도덕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물을 무리하게 안고 가기보다 제대로 된 인물을 새로 고르기를 원한다. 모범을 보여야할 자리에 있는 인물이 허물투성이라면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이미 다수 국민이 우려한 인물을 임명했다가 낭패를 보거나, 중요한 정책 추진에 애로를 겪은 경험이 적지 않다.


 진정한 용기는 ‘개과불린’에서 온다. 지도자가 실수를 먼저 인정하면 더 큰 신뢰를 얻는다. ‘국가 개조’라는 일본식 용어를 야당의 건의로 ‘국가 혁신’으로 바꾸겠다고 용기 있게 수용해 박수를 받지 않았는가? 국가 혁신도 자신을 먼저 바꾸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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