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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국회의원들이 200여 가지에 이르는 특권 가운데 단 하나라도 18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반납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지난 5월30일 임기를 시작한 19대 국회는 국민의 추상같은 개혁압력에 쇄신안을 줄줄이 읊어댔다. 수십 년 동안 약속어음에 번번이 부도를 내 오던 터라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특권 내려놓기가 하나쯤은 가시화할 것으로 착각했다. 그것도 최단시일 안에. 그 뒤 다섯 달이나 지났지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 속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다섯 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되짚어 보자.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연금제도 개선, 겸직 금지, 무노동 무임금 적용, 윤리위 기능 강화, 국회 폭력 처벌 강화 등 6대 쇄신안과 결의문을 내놓은 게 6월8일이다. 뒤질세라 민주통합당도 같은 달 24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연금제도 전면 폐지, 영리 목적 겸직 전면 금지 같은 걸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랜만에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에 한목소리를 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구나 싶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사진>


  아니나 다를까 국회쇄신특별위원회라는 기구가 석 달이다 된 8월22일에야 출범했다. 19대 국회 임기 시작 전부터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으나 그제야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여야가 6월29일 특위 구성에 합의한 지 55일만이다. 그래도 여야는 쇄신특위 출범과 더불어 국회 쇄신 법안을 11월1일까지 처리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느니, 안팎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연다느니 하며 예정된 시간표를 제시했다. 상투적인 회의를 열면 뭣하나. 늘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걸. 특권 내려놓기는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없다. 실천만 하면 그만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혹을 떼기는커녕 하나 더 붙였다. 자신들의 월급(세비)을 국민 몰래, 그것도 터무니없이 많이 올렸다. “특권 포기한다더니, 국회의원 세비 20% 인상! 겉으론 특권 내려놓는다고 말하면서 속으론 세비를 20%나 인상시키고 제발 이런 도둑놈들 숫자 좀 확 줄이자. 국회의원 세비도 국회의원이 결정하는데 우리 직장인들도 월급을 직장인들이 결정하도록 해줘라.” 지난 9월 초 국회의원들이 국민 몰래 세비를 16%(18대 국회 평균에 비해서는 20%)나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열 받은 누리꾼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제도권 언론들도 이 글을 상징적으로 부각시켰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얼마 전 “국회의원들이 특권 내려놓는다고 폼은 다 잡아놓고 제대로 된 것은 없다”고 남의 말 하듯 꼬집었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최근 유력한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국회의원 수 축소,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 폐지를 뼈대로 하는 정치쇄신카드를 내보이자 벌떼처럼 나서 ‘아마추어 정치인의 이상론’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현실성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쇄신론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아이디어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유력 무소속 후보가 등장해 1년 넘게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망각한, 낯 뜨거운 비판이다.
                                                                   

                                                <자료 사진 뉴시스: 국회의원 회관>

 

  이 무소속 후보의 지지도를 꺾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정치 무대에서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낡은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꾸라는 게 국민의 채찍이었다. 자신들은 단 한 가지 특권도 내려놓지 않고 쇄신안에 비판만 들이대니 설득력이 없다. 국회의원 특권 몇 개쯤 내려놓겠다고 여야가 호언장담한 뒤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신은 깊디깊다.


 

  보수적인 거대 언론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행태’를 보여준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1명을 늘려 300명을 채우자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며 융단폭격을 가한 게 그들이다. 그들이 이제 와서 인구비례로 따지면 선진국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적은 것이라며 생뚱맞은 논리까지 편다.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수긍이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나라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숫자를 줄이고 개혁하라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높았다는 걸 잊지는 않았을 게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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