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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문재인의 숙제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당혹스럽다.’ ‘말투는 물론 얼굴 표정 하나도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전격 사퇴 이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그 선거캠프에서 복합적인 분위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배우 한 사람이 트위터에 남긴 말 한 마디에도 “무거운 마음으로 경청하겠다”는 공식논평을 내놓을 만큼 예민한 촉각을 한껏 곤두세우고 있는 게 민주당 대선 캠프다. 배우 유아인이 일갈한 글은 안철수 지지자들의 심경을 정제하지 않은 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안철수 비난한 것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만족스럽냐. 권력을 내려놓지 않은 것은 야권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문재인 진영의 인식은 문 후보 등록 기자회견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듯하다. 관건은 문재인 쪽이 모색하고 있는 안철수 쪽과의 ‘화학적 결합’ 강도이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실행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격앙된 분위기가 가라앉고 난 뒤 안철수 캠프 인사들을 합류시키는 방안이 성공하더라도 상당수에 이르는 배타적 지지자들까지 껴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후보 문재인은 좋아하지만, 잠복해 있던 ‘노빠’들이 집권 후 설치는 꼴을 보기 싫어 안철수를 지지했다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선거 캠프의 전면에서 친노 인사 다수가 후퇴했음에도 그 같은 우려를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외에는 절대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단체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 좋은 조짐이 아니다. 이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쪽으로 이동하지 않더라도,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면 문재인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에 성공했더라도 이탈자가 적지 않겠지만, 앙금을 남긴 사퇴 여파는 ‘아름다운 단일화’ 때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후보 단일화 합의정신과 새정치공동선언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의원 특권 반납을 비롯해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치개혁안을 대통령 선거 전에 선제적으로 실천하는 과감성이 긴요하다. 선거 때마다 정치개혁을 철석같이 공약한 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처신하는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난 게 깨어있는 국민들이다. ‘안철수 현상’이 1년 넘게 사그라지지 않고 유지된 것도 이 때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정책 공약의 유연성도 이에 못지않은 과제다. 무엇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실용주의 정신을 보인 안철수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지난 총선과정에서 지지받은 정책공약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자처한 문재인의 입장에선 논란을 더 많이 낳을 수 밖에 없는 카드다.


 

  외교안보 문제는 극좌파 혁명운동까지 한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을 벤치마킹할만하다. 녹색당 당수였던 피셔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에서 외무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반전’(反戰)이라는 녹색당의 기본 이념을 뛰어넘어 실리 외교에 앞장섰다. 당 내부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공습에 독일군 참전을 적극 옹호하고, 아프가니스탄·마케도니아 파병에도 주도적 역할을 해 카리스마를 겸비한 실용주의자라는 평을 들었던 게 좌파 정치인 피셔다.

                                                                                    

   
 

 박근혜에게 ‘유신공주’라는 딱지를 붙이는 전략도 지나치면 역효과를 낳을지 모른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지닌 보수우익 지도자이긴 하지만, 안철수를 지지하는 중도층을 잡으려는 정책으로 좌클릭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유신공주’ 공격만 주무기로 써먹는 듯한 전략은, 박근혜 캠프가 ‘노무현의 아바타’라는 녹음기를 틀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안철수 핵심 지지층을 끌어오는 데는 효험이 적다는 뜻이다.

 

   그보다 정치개혁과 감동적인 캠페인 준비에 주력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더라도 안철수의 주 지지층인 20~30대 유권자를 얼마나 투표장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느냐가 과제다. 이제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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