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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4강의 공세적 외교


1999-01-13
지난 세기말 이후 한반도 사람들은 어느 한해, 어느 순간에도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네 나라를 일컫는 「주변 4강」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적이 없다. 새로운 세기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올해라고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4강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따져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해진다. 수난과 치욕의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이들 4강국이 아직 올해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천명한 것은 아니지만 특징적인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공세적 외교」가 아닐까 싶다. 강대국의 속성이 공격적이게 마련이긴 하다. 그렇지만 탈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을 제외하면 이들 나라가 경제적 측면에서든 국가안보적 측면에서든 방어개념에 비중을 두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4강국이 올들어 한결같이 공세적 대외정책을 시사하고 나선 것이 각기 다른 배경과 전략전술을 한자락씩 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상원의 탄핵심판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어 전선을 나라 밖으로 돌릴 것이라는 예상이 어렵잖게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권의 대외 무역공세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느 나라나 선거가 경제성적표에 좌우되는 추세여서 클린턴 대통령과 그 후임을 노리는 앨 고어 부통령이 빼들 카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더구나 1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의 기상예보는 이제 「맑음」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부쩍 많아졌다. 미국은 일본, 유럽, 중국 등과 한바탕의 무역전쟁을 벼르고 있다. 여진(餘塵)이 한국에도 떨어질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가 정해준 시한폭탄의 초침까지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시설 의혹을 풀어야 하는 시계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시험하면서 5월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유로화의 성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유럽순방에 나서는 등 이미 경제적 공세정책을 예고했다. 여기에다 북한이 지난해 일본열도를 가로지르는 장거리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한 이후 한반도문제에 극도로 민감해진 게 일본이다. 그들은 최근 내각정보회의를 신설하게 된 빌미도 북한에서 찾고 있다.

중국쪽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향한 강경 외교노선을 정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클린턴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미국내 대중(對中) 강경세력이 득세해 미.중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 미리 선수를 치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과 공세도 결코 느슨하지 않다.

그 좋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러시아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침몰하는 경제로 말미암아 마땅한 지렛대가 없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국과 이라크간의 갈등상황 이후 이 북극곰의 목소리는 「불만의 계절」을 실감나게 한다. 최근 몇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감정이 쌓일대로 쌓인 러시아가 꺼내들 수 있는 북한카드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주변국들이 내분이나 국내문제 해결에 여념이 없을 시기에 한반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4강국 모두 공세적 대외정책을 내비친 것은 긴장감을 더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올해가 경제위기 극복에만 전념해도 상관없었던 지난해와 다른 점은 경제안보 못지않게 포괄적인 국가안보의 시험이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4강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 외교정책당국자들의 몫만은 아니다. 국난을 앞장서 극복하기는커녕 자초하곤 해온 정치인들이 이런 바깥세계의 상황변화를 알기나 하고 제 밥그릇 챙기는 싸움질에 여념이 없는지 답답해 하는 국민들만 언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다.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