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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金 대통령의 ‘독일 벤치마킹’


1998-11-25
특정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목표로 삼아 뒤떨어지는 부분을 개선하는 「벤치마킹전략」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지구촌에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기업같은 조직에 먹혀들었던 이 전략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국가경영이나 정치에서도 이 전략이 원용되곤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가장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는 나라는 독일이 아닌가 싶다. 김대통령이 모방하려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우선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다. 지역감정을 없애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국민회의가 불모지인 영남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민의 정부」가 성공사례의 하나로 꼽는 「노·사·정 위원회」의 모델도 바로 독일이다. 한국의 노·사·정 위원회는 지금까지만 보면 모델인 독일보다 뿌리가 잘 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김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세대교체론에 맞서면서 내놓은 맞불작전카드 역시 독일에서 빌려왔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과 더불어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서독총리를 공세차단의 방패로 활용한 것이다. 김대통령처럼 70세가 넘은 나이에 최고지도자가 된 아데나워는 국민의 숭앙을 한몸에 받는 건국의 아버지여서 「사표(師表)로서의 설득력」을 지니기에 충분조건을 갖췄다. 김대통령이 통일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김대통령이 벤치마킹으로 삼고 싶은 독일의 장점은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지만 정작 김대통령이 가장 강도 높게 따라 배워야할 독일의 장점은 뒷전에 밀려 있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환경정책이 그것이다.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환경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나라라는 것쯤은 이제 환경전문가가 아니라도 안다. 한달전 사상 처음으로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한 이후 독일 환경정책의 강도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높아질 개연성이 많다.

독일은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환경보호의식의 과잉으로 비칠 만큼 많은 환경규제의 올가미로 가득하다. 규제완화를 미덕으로 여기는 독일이지만 환경관련규제만은 7,000여가지에 이른다니 입이 벌어질 정도다. 우리의 실상은 이런 독일과는 반대로 달리는 열차처럼 보인다. 김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주무부처인 환경부를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훼방을 놓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환경부가 마련한 「상수원 특별법안」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팔당 상수원지역 주민의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인기에 영합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백년대계보다 눈앞의 지역정서나 멀지 않아 있을 선거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환경정책은 수없이 많다. 그린벨트의 대폭 해제, 접경지역 개발, 국립공원구역 재조정 등 하나같이 녹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 뿐이다. 바로 엊그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만해도 국민 대다수가 그린벨트를 완화하지 않기를 원하고 오히려 늘려야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김대통령의 환경정책을 의심하게 만드는 좋은 사례 가운데 또하나는 서울 여의도광장의 시민공원조성 반대였다. 여의도 시민공원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조순(趙淳) 전 서울시장의 작품이라는 점이 반대의 속내였는지 모르지만 도시의 녹지공간은 많을수록 좋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잖아도 우리의 금수강산은 가는 곳마다 흉물스런 러브 호텔, 음식점, 시멘트 고층아파트로 가득 차고 온갖 공해물질로 뒤덮여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 신문과 TV에 등장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는 지경이다.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를 구실삼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우리 국민의 환경의식도 문제지만 근시안적인 국민의 뜻에 영합하는 「국민의 정부」가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