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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언론관

 
1999-04-07
신문의 역사와 언론 자유를 얘기하자면 영국의 「3 존(John)」을 빼놓을 수 없다. 「3 존」은 「아레오파지티카」의 저자 존 밀턴, 「시민정부론」을 주창한 존 로크,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을 일컫는다.이 가운데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는 서양에서 언론의 자유를 언급한 최초의 책으로 손꼽힌다. 「실낙원」의 저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밀턴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처음으로 언론 자유의 횃불을 높이 치켜든 인물인 셈이다. 17세기에 영국의회를 향해 언론검열 반대를 외친 그의 숭고한 뜻은 미국의 독립운동과 프랑스혁명 때도 자유주의의 경전(經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그가 청교도혁명 이후 언론검열관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밀턴의 역설」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밀턴의 영향을 받은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은 이제 초등학생들조차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 정부의 기초는 인민의 의견이므로 정부의 첫째 목적은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야 한다. 신문 없는 정부냐, 정부 없는 신문이냐의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
그랬던 제퍼슨도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된 뒤에는 말을 바꾸고 만다.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제퍼슨의 태도는 정권을 잡은 지 불과 1년 만에 표변한다. 신문들이 자신을 비판하고 공격했기 때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신문들이 중상모략과 거짓으로 가득 찼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김대중대통령도 과거 언론 때문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지만 줄곧 언론에 우호적인 정치지도자로 높은 점수를 얻어왔다. 그는 지난해 「신문의 날」 기념행사장에서 의미깊은 말을 남겨 감명을 줬다. 「비판 없는 찬양보다 우정 있는 비판」을 주문한 사실은 언론인은 물론 국민에게 그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김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제퍼슨의 유명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자신에 찬 말을 했다. 『 나도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1년이 지난 지금 김대통령은 제퍼슨이 취임 1년 후 그랬듯이 언론, 특히 신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그가 소망했던 「우정 있는 비판」은 언론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뜻인 것 같다. 최근 들어선 동강 영월댐 건설을 둘러싸고 환경단체에 일방적으로 편을 든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빌미로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일부 언론은 그의 말 한마디에 논조가 180도 달라졌다. 공보처의 부활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국정홍보처」라는 순화된 이름에다 각계의 극심한 반발을 의식해 언론정책기능을 문화관광부에 그대로 두긴 했지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시절 언론장악을 그토록 비난해 마지 않던 김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어 폐지했던 공보처를 부활함으로써 「말바꾸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환경과 입장이 바뀌면 누구나 생각이 변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나라를 이끌고 가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잘못은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비판하는 언론에 섭섭함을 느끼는 강도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데 있다. 이런 현상에 관한 한 김대통령의 바로 전임자를 비롯한 역대 집권자들이 이미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개혁의지가 곳곳에서 윤색되고 있지만 개혁에 대한 언론의 의지는 김대통령의 취임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김대통령의 주장대로 언론도 내부 개혁의 여지가 적지 않다. 그것과 김대통령의 언론관은 별개의 문제다. 김대통령이 올해 신문의 날인 오늘 또 어떤 멋진 말을 남길까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의 훌륭한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에게는 「일관성」이 더욱 요구된다.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