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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공직자들의 '재테크'

 

1999-03-03

베트남 전쟁의 승패는 군이 아니라 지도층과 공직자들에 의해 결판이 났다는 진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주의 체제하의 북쪽 베트남 지도자와 공직자들의 수범(垂範)이 남쪽 베트남의 부패한 지도층과 국민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지도층과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치른 전쟁에서 북쪽 베트남이 승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하노이의 호치민주석 묘소와 생가를 찾는 국민들이 줄을 잇는 까닭은 현장을 찾아가 보면 더욱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런 베트남의 아름다운 전통은 「도이모이」(쇄신)란 이름아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레 카 퓨 공산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 지도층 공직자들은 관저(官邸)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사저도 부자동네나 특정지역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 보통 마을의 보통 집에서 갑남을녀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산다. 생활 자체가 근검한 것은 더 이를 데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이름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지난주말 발표된 3부(三府)의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상황만 봐도 솔선수범은커녕 IMF체제의 고통분담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느낌을 준다. 1억원 이상의 재산증가자만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 사실은 2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와 수많은 저소득층 국민에게는 허탈감이라는 말로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편법, 변칙까지 활개를 쳤다는 점 때문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켕기는 게 있어선지 지면이 줄어들고 이튿날 휴간신문이 많은 주말을 택해 발표하는 「잔머리 굴리기」는 한층 얄미움을 사고 남는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뛰쳐나간 노동자들에게는 또 무슨 구실을 대며 설득할 것인지 아득해진다. 지나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국민의 정부」의 고위공직자=「국민의 공직자」라는 등식을 실제로 성립시키지 않는 한 치명적인 갈등국면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대통령이 엊그제 3.1절 기념식에서 『 정부가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했으나 어느정도 국민의 가슴에 와 닿을지 걱정스럽다.

병주고 약을 줘도 고울 리 없는데 병주고 약마저 주지 않는다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보는 체라도 해봤을까. 우리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은 정책의 오류와 시류에 휩쓸리는 인기전술로 IMF체제라는 중병을 국민에게 옮겨주고 나서도 「약만 올리는」 냉혈한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좋은 공직자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한 일본학자의 지적이 한국에서도 적용된다면 우리 국민을 또한번 안타깝게 한다.

우리의 공복(公僕)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인 「승관발재(昇官發財)」의 잔재를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살펴보게 된다. 관료로 등용돼 권력의 일부에 끼여드는 것을 정상적인(?) 축재방법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본고장이었던 중국에서조차 혁파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아직 고시를 과거시험쯤으로 여기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이라면 송나라 악비전(岳飛傳)의 한 구절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문신(文臣)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장(武將)이 죽음을 아끼지 않는다면 천하는 평화롭다」
명실상부한 실사를 통해 공직자 재산의 투명성을 높이고 법을 어길 때 처벌을 강화하는 등 각종 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고통분담과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만에선 총통과 행정원장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신고법에 따라 강제로 신탁관리에 맡기는 제도를 이미 3년여전부터 시행하고 있을 만큼 엄격하다. 대만의 고위공직자들은 전 재산을 일단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위탁,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줘왔던 대만의 제도를 참고함직하다.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