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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폭로정치, 폭로저널리즘

 
2000-03-17
자유당 정권시절 이승만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한 각료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절묘한 맞장구를 쳤다는 에피소드는 지금도 심심찮게 회자된다. 이 얘기는 윗사람, 특히 최고권력자에 대한 '아부의 극치'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얼마전 청와대 행사에서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부른 고위 공직자가 구설수에 올랐을 때도 '방귀사건'이 한 술자리에서 화제의 안주로 등장했을 정도다."시원하시겠습니다" 사건의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된 이익흥 당시 내무장관이라고 알려져 있다. 매우 그럴듯한 일화는 유감스럽게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폭로했던 국회의원은 조선시대때 한 내시가 왕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는 사실(史實)을 들었던 터라 우스갯소리로 지어냈다고 먼 훗날 번복했다는 것이다. 국회속기록에도 그의 해명이 남아 있다고 박준규 국회의장이 최근 한 사석에서 털어놨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언론에 폭로해 기정사실처럼 돼버린, '없는' 이 사건을 거의 모든 국민이 여전히 '진실'로 믿고 있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폭로만 보도했을 뿐 진실을 밝혀내고 전하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조작한 에피소드 때문에 이 전장관의 가족과 친척이 입은 수모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현직 고위 경찰간부인 그의 아들은 진급 때도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고 전해진다. 본인이 아무리 부인한들 먹혀들 리 없었던 게 우리 사회였던데다 자녀들이 일일이 해명하기가 구차스러웠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말이 얼마나 엄청난 파장을 낳는지를 이 사건이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장난삼아 논에 돌을 던지지만 돌에 맞은 개구리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비유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폭로는 수십년이 지난 요즘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곳곳에서 체감하게 된다. 총선이 임박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근거가 희박한 폭로나 음해성 발언을 쏟아내듯 하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흐지부지 넘어가곤 하는 게 고질적인 우리 정치풍토지만 맹성(猛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네 탓만 있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정치인조차 사실을 입증할 만큼 구체성이 없는 내용을 폭로한 뒤 얼버무린 사례는 실망감을 더해 준다. 말로만 변화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다는 이른바 NATO(No Action Talking Only)행태가 정치인의 폭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한 야당 총재의 발언 때문에 유행어가 돼 버린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폭로공방은 투표일이 임박해지면서 더욱 난무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우려한다. 사실무근임이 드러난 뒤에도 여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폭로의 속성을 정치인들이 악용하는 탓이다.

폭로는 당연히 사실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사실무근임이 드러날 경우 스스로 정정하고 떳떳하게 사과해야 향후의 폭로 때도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1차적으로 정치인의 윤리와 도덕성의 문제다. 시대가 달라져 가고 있음을 정치인들이 자각해야 할 때도 됐다.

정치권의 자성이 없으면 폭로의 진실성 여부를 가려내야 할 책무는 현실적으로 언론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언론의 속성도 비리폭로에서 비켜나갈 수 없긴 마찬가지다. 언론의 성장사가 폭로저널리즘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여야의 공방만 중계할 게 아니라 폭로내용을 끝까지 추적해 사실 여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근들어 힘을 얻고 있는 시민들의 닦달이 정치권과 언론의 직무유기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감안하더라도 폭로의 진실성을 가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 저항시인 예프토치엔코가 "정의와 진실은 완행열차처럼 항상 늦게야 도착한다"는 명언을 남겼듯이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공감하고 있을 법한 얘기임에 틀림없다.

김학순 /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