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발표된 한 유명서점의 신년초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약간은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된다.김용옥 교수의 '노자와 21세기'와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인 스님 현각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와 원성 스님의 '풍경'이 나란히 4, 6위에 올라 있다.
불교철학이나 노장사상을 담은 이 책들은 언뜻 보기엔 인터넷, 정보화, 사이버사회 등 첨단주제의 담론이나 시대흐름과는 하나같이 거리감이 있는 것들이다. 나라 안팎에서 희망과 장밋빛 미래를 들먹이며 떠들썩하게 맞은 '새천년의 벽두'라는 분위기와도 어쩐지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복잡다기하고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상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심리가 독서경향에 투영되고 있음이 어렵잖게 읽혀진다. 마음은 비우는 게 낫다는 평정된 국민정서의 한 단층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뉴 밀레니엄'과 함께 새로운 정치와 새 패러다임을 운위하며 거창한 구호들을 내걸고 16대 총선에 임하는 과욕의 정치권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우리 정치판은 변화와 개혁을 늘상 요란하게 외치지만 실제로는 달라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새해 초에도 변함없는 민심인 것 같다.
올해 총선정국은 여야만 바뀌었을 뿐 4년전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연극의 등장인물이 몇몇 교체되긴 했지만 무대장치나 상황전개는 닮은 점이 너무 많다.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우리네 속설을 실증하는 듯하다.
겉모양을 보면 집권당이 새 당명과 일부 인물 영입으로 신장개업을 가장하는 것이 똑같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달리했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개명만 한 것이나 다름없다. YS가 이회창 현 한나라당총재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처럼 DJ는 득표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인제 당무위원을 선대위원장으로 사실상 내정한 단계다. 지난 1996년에는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가 민자당에서 팽(烹)당한 뒤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번에는 DJ의 합당요청을 뿌리치고 독자노선을 걷고 있어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3당구도로 총선을 치르게 됐다. 새로운 피를 수혈한답시고 전문분야에서 그대로 키우는 게 좋을 성싶은 스타급 인물을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것도 15대 총선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의 내용물은 변혁의 흔적을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정당의 조직과 운영, 선거운동방법은 거의 그대로여서 '대망의 2000년대'를 거론할 자격조차 없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정치개혁특위라는 허울좋은 기구는 기득권 상실을 두려워하는 기성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옛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게 만드는 직무유기를 범했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뜯어 고치겠다는 숭고한(?) 목적은 '창피는 순간, 이익은 영원히'라는 속어 속으로 파묻혀버렸다.
시민단체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저항하는 정치권의 철면피를 도리어 지탄하는 목소리가 언론사에 빗발치고 있다.
지난해 비행기사고로 세상을 등진 존 F 케네디 2세의 역설적인 '철면피론'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대로 적용되는지도 모른다. 케네디 2세는 2년전쯤 방한했을 때 정치인의 조건으로 "잘 알려진 섹스스캔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철면피가 돼야 한다"는 걸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마라조프의 형제들'에서 오래전에 갈파했듯이 "인류와 국민을 들먹이는 정치인들일수록 개개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른다"는 얘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기 때문일까.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 철면피를 고수하는 한 정치권의 신뢰회복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 누가 먼저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 오느냐가 당면한 총선의 승부도 좌우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상대방에 비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느냐는 비교우위적 해명은 먹혀들지 않는다. 그것도 정치인들의 특기인 말부터가 아니라 실천의 선수(先手)가 관건이다.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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