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1-26 |
옷로비 의혹사건은 적어도 3가지 측면에서 반면교사가 된다. 거짓말의 확대재생산 법칙,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공직자의 문서관리수칙이 그것이다. 너무나 평범하지만 흘려들어선 안될 것들임에 틀림없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엊그제 『 저희 부부의 처신이 반면교사가 되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간곡히 희망한다』며 국민 앞에 사죄한 성명서에도 3가지 측면은 어김없이 함축돼 있다.이번 사건은 무엇보다 공직자의 기본의무인 문서관리가 어느 정도 허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전범(典範)이다. 국가 중추기관의 기밀사항이 사인(私人)의 손을 3번이나 거쳐 온국민에게 공개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수장(首長)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는다. 당시 검찰총장 부인이 통일부장관 부인에게 국가기관이 작성한 기밀문건을 넘겨주는 현장에 행정자치부장관 부인이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면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행자부장관은 기밀문서가 담긴 정부기록보존소를 관리하는 국무위원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었던 행자부장관 부인의 말은 한층 걸작이다. 문제의 문건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검찰총장 부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태연스럽다. 『 묻지 않았다. 검찰총장의 부인 정도면 그런 문건은 당연히 보는 줄 알았다』 남편이 장관이나 검찰총장이면 부인도 으레 장관이나 검찰총장급 행세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을 지니지 않았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최고권력 주변 사람과 부인들의 자세와 처신이 이렇다면 아찔하다는 느낌부터 들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사(公私)가 구별되지 않는 우리의 서글픈 현주소다. 「보통검사」의 총수였던 인사가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에게 조사를 받는 일로 확대된 것도 공사유별(公私有別)을 잊었거나 애써 무시한 탓이다. 옷로비 의혹사건은 김대중대통령이 『 언론의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해 마지 않았던 일이다. 김대통령이 이런 확신을 갖게 했던 것은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문서유출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옷로비 의혹사건에 국민의 기억이 잠시 묻혀 버린 언론대책문건 사건때 부수적으로 드러난 파행은 이에 못지 않다. 최고의 기밀을 취급하는 국가정보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직무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를 멋대로 들고 나오는 탈법을 저질렀지만 문책은커녕 별 탈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장본인은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으면서도 익히 듣던 『 국민이 원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내년 총선에서 심판을 받겠다)』는 말로 자기합리화만 할 뿐 자성의 기미는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다. 이들 전직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행자부장관 부인만 봐도 고위공직자들의 흐트러진 문서관리의식은 어렵잖게 읽혀진다. 사실 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의 문서관리상태를 타매하고 질책하면서 출범했다. 김영삼 정부의 기밀문서 파기를 집중 비판하면서 기록관리를 문제삼은 것은 새 정부가 조선시대보다 못한 기록문화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올해 초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제정해 대통령의 통치문서까지 보존, 관리하려는 의욕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들은 잇달아 터지고 있는 문서유출사건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공공기관 기록과 문서의 관리는 국가수준의 척도다. 국가기관의 문건이 개인의 사유물처럼 나돌아 다니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기록문화의 선진국」은 구호로 끝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중추기관의 장이 앞장서 공적인 문서를 제멋대로 다루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진다면 나머지 공직자들에게는 할 말이 없어진다. 지나간 정부의 공문서 파기만 비판하고 국가 중요기관의 기밀이나 다름없는 문건들이 사적인 일에 쓰이는 것을 계속 용인하고 만다면 국민이 「국민의 정부」에 믿음을 줄 것인지 의문이다. 사회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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