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3 |
노무현 정권의 시대정신과 화두의 하나는 유감스럽게도 10년 동안이나 부르짖고 귀에 따갑게 들어온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선 두 정권이 불명예스럽게 달았던 '실패한 개혁이란 이름의 딱지'를 떠 안아야 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겐 달갑잖은 숙제이자 숙명이다. 변화와 개혁을 소리높이 외쳤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나 또다시 진정한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3김 시대의 청산'이라는 수사(修辭)가 하나 더 붙는 것이다.두 정권의 개혁 실패원인은 다양하게 지적되고 있지만 잘못 선택된 방법론과 수순 착오로 귀결된다. YS와 DJ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으로 자기개혁의 실패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노 당선자가 정치개혁을 맨 앞자리에 앉히겠다고 천명한 것은 일단 수순을 제대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개혁정책이든 추진 과정에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추진세력을 강화할 것인가, 저지세력을 감소시킬 것인가 하는 난제다. 동전의 양면같은 이 문제는 간단명료한 것 같지만 실패한 개혁을 복기(復棋)해 보면 언제나 여기에서 교훈이 발견된다. YS, DJ정권의 각종 개혁정책의 실패 사례도 예외가 아니다. 추진세력과 저지세력의 상관관계는 사회과학자 커트 레윈이 '세력장 분석이론'으로 정리한 이래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우리네 지도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 가장 손쉬운 접근법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단순히 추진세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우군(友軍)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추진세력의 강화가 말처럼 쉽지 않을 만큼 사회구조가 복잡다기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추진세력을 증대시킬 것인가, 저지세력을 감소시킬 것인가의 원리는 자동차 운전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조금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브레이크를 풀어야 할까, 아니면 가속 페달을 더 밟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면 정답은 어렵잖게 나온다. 그 상태에서 가속을 하면 속력을 증가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엔진을 태워 버릴 수도 있다. 반면에 브레이크를 풀어 준 뒤 가속페달을 밟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높은 속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힘의 비중을 어디에 얼마나 둘 것이냐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원칙중심의 리더십'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원칙적으로 저지세력 감소에 3분의 2 정도의 힘을 사용하고 나머지 3분의 1의 힘은 추진세력 증대에 사용하라고 권한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이와 반대로 생각하기 쉽다. 다만 상황마다 특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저지세력의 성격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이를 용의주도하게 줄여나가야 한다. 그럴 경우 저지세력이 추진세력으로 바뀌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반대로 무리하게 추진하면 냉소세력만 더욱 커지고 신뢰성도 현저하게 낮아진다. 점차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양극화돼 의사소통마저 약화된다. 나중에 아무리 멋지게 포장되고 새로운 추진력이나 방법론이 나타나더라도 별 효과가 없다.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거나 다수 국민의 이해가 걸린 현안일수록 한결 그렇다. YS가 공직자들을 개혁주체가 아닌 개혁대상으로 삼아 우군보다 적군을 많이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돼 왔다. DJ의 각종 개혁정책이 실패한 원인 역시 추진세력보다 저지세력을 먼저 줄이지 못한 데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목적이 옳으면 수단과 방법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전철(前轍)을 밟기 쉽다. 사실 화끈하지 않은 개혁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다. 노 당선자의 성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노 당선자 앞에는 절체절명의 외환위기 체제 아래 저항세력의 목소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DJ정부 때보다 결코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절반에 가까운 반노(反盧)세력은 감성에 더 익숙한 친노(親盧)세력보다 한층 이성적이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권자가 많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역풍을 막을 줄 아는 지혜는 좌고우면(左顧右眄)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학순 / 편집국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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